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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치유 12

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치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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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장. 신유사역에 대한 성경·신학적 견해

 

6.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의 신유

1) 베드로의 신유사역

이 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동안의 베드로의 삶과,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베드로의 삶, 그리고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의 천상사역에 동참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의 제자들의 사역과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의 사역에는 차이가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지상사역과 천상사역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분의 지상사역보다는 천상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의 첫 능력사역(예수님의 천상사역의 동참)은 베드로를 통하여 나타났다.
따라서 우리는 베드로의 사역을 통해서 능력의 실체를 알아보고 배워야 한다.
베드로가 행한 첫 기적은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이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행3:6

 

이 기적을 보고 놀란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행3:12

 

그리고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게 한 비밀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아래 구절에서 베드로는 그 능력의 비밀에 대해 말하는데, 기사와 표적의 핵심은 바로 이 두 가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3:16

 

2) “그 날”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베드로는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능력을 나타낸다는 것을 어디서 배웠을까?
우리는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 “우리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비밀”, 그리고 “능력사역의 비밀”에 대하여 가장 깊은 가르침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지상사역 동안에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계속적으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5:26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10:30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14:13-14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14장 15절부터는 또 다른 보혜사가 우리 안에 오심으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할렐루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14:16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20

 

“그 날”은 언제를 말하는 것인가?
바로 아버지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주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날을 말한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리우셔서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시지 않는 때를 말한다.
이것은 바로 성령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16:7

 

그런데 우리는 “그 날”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간과하기 쉬운데,
그것은 바로 “그 날”이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약속하신 모든 것을 다 이루신 후를 말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승천 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날”이 언제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바로 오순절날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 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요한복음 14장 16절과 20절을 다시 읽어 보자.
“ 그 날”에는 또 다른 보혜사가 우리 안에 오셔서 영원히 함께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알게 된다.
또한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가 하나가 된다. 할렐루야!

그 후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서 새롭게 가르치셨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16:23-24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저자 추가)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요16:26-27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실 때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구했고,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아버지께 구하였지만,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그 날”에는
바로 그 성령님이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직접 아버지께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가 비록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았지만,
칭의롭다함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아버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님께서 위로부터 임하시는 “그 날”에는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우리의 의식에서 깨달아지며,
단순한 칭의가 아니라, 내가 그분의 본질과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나아갈 수도 없고, 아버지와 교제할 수도 없고, 아버지께 구할 수도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고 죄사함을 얻었으면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일 수밖에 없다.
“그 날”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믿었기 때문이며,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히2:11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17:22-23

 

그분이 우리 안에 오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관계하는 것처럼 우리가 아버지와 관계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그리고 우리가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킹덤 로열 패밀리(Kingdom Royal Family)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 날”은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는 날이다.
즉, 육적 가문에서 영적 가문으로 변화되는 날이다.

3)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

베드로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을 어떻게 배웠을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또한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 배웠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10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할 때 가지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아버지의 믿음이다.
결국 예수님은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아버지의 믿음으로 공생애 사역을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하실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지신 하나님의 믿음이었다.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이루시는 일이다.
즉, “하나님이 이르시되 …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를 이루시는 일이다.
예수님께서도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 그대로 되니라”를 이루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창조사역을 하나님의 믿음으로 행하셨다.

그렇다면, “그 날” 이후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20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16:23-24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우리가 하나 되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바로 예수님께 있는 그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의 뜻을 이루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행하신 창조사역에 동참하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0-24

 

이 구절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있어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 걸림돌들은 첫째, “누구든지”, 둘째,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셋째, “무엇이든지”이다.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2절의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라”를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하나님의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째, 우리가 한 가족인 것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내가 말할 때 그대로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믿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창조의 역사를 행하시는 믿음이다.
자신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말씀하시면 그대로 된다는 믿음이다.
그것을 인간적인 수준에서 설명하자면,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니라”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믿음이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것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믿음이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일5:14-15

 

사도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3:16

The faith which (comes) through Him or the faith that is through Jesus.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다. 사도들이 말하는 믿음은 자신들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믿음이 하나님의 믿음이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믿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이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믿음으로 공생애 사역을 하셨다.
그 하나님의 믿음이란 바로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 자신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임한 것이다.
한편,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지셨던 하나님의 믿음과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인하여 가능해 진 것이다.

 

믿음의 주요(the author and perfector of our faith)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바로 믿음이시다.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그분의 믿음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막16:17-20

 

이 말씀을 다시 풀어보면, “믿는 자들에게는”이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이라는 뜻이며,
“표적이 따르리니”는 “이 세상의 법칙을 벗어난 일들이 일어남” 또는 “창조의 역사가 일어남”이라는 뜻이며,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란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란 뜻이다.

7. 치유사역과 하나님의 역사만을 좇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 질문 앞에서 기억해야 할 정말로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영적전쟁을 통해서 마귀를 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2:14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친 백성의 삶이지, 질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좇아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에 가득 찬 것이 무엇인지가 그 사람을 결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것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것인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인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건강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한다.
감기와 암을 어떻게 치유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더 많은 환자들이 생기게 된다. 건강하게 살 때 더러운 질병이나 악한 영을 틈타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네델란드에서 전문가들이 와서 그 분의 말을 통역하며 농촌지역을 돌았던 일이 있었다.
많은 농가에서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떤 질병을 어떻게 치유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전문가는 왜 그런 질병이 생기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분의 관점은 이렇게 주위 환경을 처리하고, 이렇게 재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관점이었고,
농민들은 생겨난 병에 대해서 치유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수많은 장소에서 부흥이 일어났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부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왜일까?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했고, 수많은 역사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부흥은 사라졌을까?
그것은 바로 그 부흥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그 부흥을 통해 하나님나라에 들어와 그 친 백성의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부흥 안에서 일어났던 현상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기사와 표적을 행하고,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라고 부흥을 허락하셨을까? 아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와 그 친 백성을 삶을 살라고 허락하신 것이다.
은혜의 삶을 누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4:7

 

우리는 이 땅에서 온전한 삶을 살려고 해야 한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생각해 보라.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4:23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9:35

 

하나님나라에서 그 친 백성의 삶을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질병도 고통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치유사역에만 치중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나라 도래의 징표 중의 하나만을 가르친 것이지, 그 나라의 삶 전부를 가르치는 것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가르친 것이지, 하나님 나라의 삶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나아가야 할 길은 하나님나라의 삶이다. 질병을 치유하고,
약한 것을 고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삶에는 질병도, 가난도, 묶임도 없다.
그곳의 삶은 은혜의 삶이다. 은혜의 삶을 누려라. 그것은 오직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한 삶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7:21-27

 

사람들은 흔히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 것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틀림없이 대단한 일이며,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으로는 하나님나라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것뿐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나라의 삶이다. 이 기초가 없는 사람들은 치유 받고도 다시 재발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엽면시비라는 것이 있다.
뿌리가 좋지 않으면, 위에서 아무리 주어도 잠깐은 반짝 빛나고 그럴듯하게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시들어 죽고 만다.
모든 능력의 근원은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물 한 바가지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많다.

 


 
Ⅰ장. 신유사역에 대한 일반적인 고찰
Ⅱ장. 신유사역에 대한 성경·신학적 견해

1. 신유에 대한 부정적 견해
2. 신유에 대한 기적종식론과 은사중지론에 대한 이해
3. 신유의 성경적 근거
4. 구속사적 관점에서의 신유
5. 신유에 대한 번영복음과 하나님나라 복음
6.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의 신유
7. 치유사역과 하나님의 역사만을 좇는 것이 옳은 일일까

Ⅲ장. 신유와 치유
Ⅳ장. 성경적 신유사역
Ⅴ장. 신유사역의 분석
Ⅵ장. 하나님 자녀 관점에서의 치유
Ⅶ장. 신유사역의 실제
2014년 3월호부터 연재되고 있는 「HTM 지상세미나」 섹션에서는 손기철 장로의 저서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치유와 권능』(두란노)에
소개된 치유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그동안 「월요말씀치유집회」, 「치유사역자 스쿨」, 「치유세미나」, HTM 뉴스레터 『헤븐리터치』의 「신
유」 섹션 등을 통해 듣고 보고 배웠던 신유와 관련된 방대한 내용들이 총망라될 것입니다. 신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
했음을 증거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시는 모든 독자들의 열독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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