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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우리는
병들 수 없는 존재입니다.
2016년 2월 2일 화요말씀치유집회 메시지
이 시간 이 전(殿)에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의 나라로 침노하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 공간, 물질을 초월한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인식할 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말씀으로 주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믿기지 않는 것을 내 마음으로 “믿습니다.”라고 하는 정신력이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에 의지할 때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3:15
여러분 자신을 내려놓고 성령님께 여러분 자신을 드릴 때에 여러분 심령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풀어주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 1:38
마리아의 이 말은 밖에서 안으로 뭔가를 집어넣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이다”라는 말씀은 영이고 생명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말씀이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풀어지는 이 밤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약5:14-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오늘 이 밤이 그 밤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안에 희락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까? 의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여러분의 마음이 일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일찍 와야 합니까? 왜 찬양합니까? 왜 기도합니까? 여러분이 찬양하고 기도하고 일찍 와서 묵상하는 이유는 바로 여러분의 주파수를 하나님의 주파수에 가까이 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점점 다가가는 그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여러분이 일찍 와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또 여러분의 육과 혼 전부를 깨뜨리기 위해서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헬라어의 시제로 보면 미래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병이 있으면”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병든 자가 있느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병이 있으면 장로들을 청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적으로 병든 자가 있느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난을 당하고 병드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치유해 주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구약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복음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사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함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본질이 변했습니다. 아멘!
여러분! 어떤 문제에 대해서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사고방식, 킹덤 멘탈리티를 가지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을 어떻게”가 아니라 어떤 일이 내 안에 닥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첫 번째 생각해야 될 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기초한 삶을 사는 자가 아니라 본질에 기초한 삶을 사는 자가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의 본질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것도 공짜로! 은혜로! 할렐루야!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더 이상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는 복음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자들을 옥에 가두고 감옥에 집어넣는 일을 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드린 것 없이 하나님께 선한 일을 행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종교적인 사람이 가장 비복음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헌신적이었고 누구보다도 종교적이었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복음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에 그 복음을 믿는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는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다음부터 그 은혜를, 복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정말 믿고 싶지만 믿기어지지 않는 이 좋은 소식,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인하여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 구원은 우리의 죄를 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과 혼, 우리의 모든 고난, 모든 묶임, 모든 가난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질병이 있고 가난이 있고 묶임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는 죄를 짓지만 본질적으로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질은 새로운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의이지만 내 육적으로는 여전히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 틈을 통해서 마귀들이 우리에게 고난도 주고 가난도 주고 질병도 줄 뿐입니다. 그러나 내 본질은 온전함입니다. 내 본질은 거룩함입니다. 아멘! 여러분이 그 사실을 깨달을 때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 육신에 들어온 더러운 질병을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회개하고 용서하고 내 잘못들을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죄 사함을 받고 난 다음에 들어온 것들은 처음에는 내 죄나 나의 고통 때문에 나의 잘못 때문에 들어왔기 때문에 합법일지 모르지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할 때 그 죄는 사라졌기 때문에 그들은 불법인 것입니다. 불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아멘! 그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네가 온전하지만 네 잘못으로 인해서 혹은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서 네가 지금 병 들었느냐?”라는 말 속에는 본질적으로 우리는 병들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 묶여서 지금 병들고 고통 받고 가난한 이것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 ‘나’는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건 내 육신의 내 현실에 나타난 것뿐입니다. 내 본질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 본질은 거룩합니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할렐루야!
장로들을 청하면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주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질병을 치유하고 기적을 일으킬 때 우리 이름으로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고역이고 노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뭔가를 받아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하나님으로부터 뭔가를 받아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고 고역을 감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내 이름도 아니고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라고 하신 것은 특권이고 기쁨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행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지, 성공을 위해서 열매를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멘!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할 일이 있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아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참 믿음으로 그분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마다 영적인 세계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아멘!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라고 말합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구약에 있어서 성별하다, 구별하다, 거룩하게 구별하다는 뜻으로 기름을 바르는 것입니다. 또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기름을 바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름이라는 것은 성령님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다른 말로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그 기록된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기도라는 겁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도는 우리가 기대하고 소망하며 “반드시 치유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 믿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로 붙드는 그것이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 자녀에 있어서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셔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행하실 때에 예수님 앞에 나아간 자들의 믿음은 인간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에 하나님나라가 임했고 그 하나님나라 안으로 들어간 자녀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그 믿음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제는 그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니라! 그의 믿음으로 살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드릴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아멘! 그분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모든 질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아멘! 그분께 드리는 것을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그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아멘!
여러분의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분 전부를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을 사로잡게 될 때,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자기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미 내 안에 있는 믿음이 나타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계십니다. 나는 거룩한 자입니다. 나는 의로운 자입니다. 아멘!
나는 항상 영원히 거룩하고 영원히 의로운 자입니다. 그런데 마귀들은 지금 돌면서 어떻게 하든 내 과거의 상처, 쓴 뿌리, 나의 부족함을 통해서 들어와서 내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대속하셨기 때문에 날마다 회개해 나가면서 내 자신이 온전함을 누리고, 불법으로 들어온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내며 그 거룩함을 유지해 가는 것입니다. 아멘!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5:23
여러분! 여기 이 말씀을 본래 헬라어에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거룩한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에서는 “거룩한”을 빠뜨렸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너의 거룩한, 너의 온전한 영과 혼과 육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강림하실 때까지 흠 없이 보전되기 를 원하노라 즉, 이것은 흠이 있는 자가 흠 없게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혼과 육과 영은 whole, 온전하고 거룩한 거란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거룩함을 유지해 나가야 되는데 지금도 마귀는 두루 다니며 우는 사자처럼 우리의 육신과 우리의 마음에 죄와 죄악을 통해서 우리를 도둑질해 나가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문제에 대해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미 깨끗한 것이니 잠시 더럽혀진 걸 깨끗하며 온전하게 유지해 나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기를 축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협착한 겁니다. 좁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십시오. 아멘! “무엇을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내가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현실에 기초한 삶을 살지 마십시오. 본질에 기초한 삶을 사십시오. 아멘!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십시오. 바로 그때가 의롭게 되는 순간입니다. 다른 말로 그때에 하나님의 통로와 내 통로가 맞아 들어가는 때입니다. 아멘!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앞서 야고보서 5장 14~15절 말씀드린 것처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아멘! 예, 그렇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할 때의 믿음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세상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있든지 없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이 말씀은 세상적인 믿음일 때만 적용되는 말입니다. 이때 믿음은 바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그 보혜사 성령님이 그 제자들 안으로 들어오셨을 때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면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아멘!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 믿음이 우리 안에 나타날 때는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불신의 양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커질 수도 있고 적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신적인 믿음, 이 세상적인 믿음은 가지면 가질수록 반대편에는 의심이 더 생겨납니다. 그 뒤에 있는 의심은 불신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 불신이 있는 만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내 안에 있지만 나를 통해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신적인 믿음이 없어져야 합니다. 없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자신을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나라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나의 나라와 나의 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이유입니다. 내 질병, 내 욕심, 내 소유,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은 내 나라와 내 소유, 내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내 삶이 풍성케 될 것이고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기 때문에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