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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본 주기도문
3. 나라가 임하시오며
1) 나라가
(1)나라의 실체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할 때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 혹은 왕국(kingdom)을 의미합니다.
왕국(나라)을 가리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말쿠트’(malkuth), 헬라어로는 ‘바실레이아’(basileia)입니다.
흔히 “나라”라고 할 때는 어떤 공간적인 영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신구약 모두에서 ‘통치 영역’에 해당하는 장소적 개념보다
‘주권, 통치, 지배’의 개념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광이 임하심으로 인하여 그 통치권이 미치는 영역을
부차적인 의미의 나라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장소에 임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나라를 마음에 두고 한 질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셨다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 로마의 통치가 곧 끝이 나고 메시아가 왕으로 오셔서
다윗의 왕국이 건설되지 않겠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나라는 실존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차원의 나라가 아니며, 실재하지만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욱 놀랍게도 하나님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그들뿐만 아니라 경험과 과학을 중시하는 오늘날
우리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손에 잡히지 않고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 그 무엇을 실존과 실체로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한편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으로 붙잡혀 가셨을 때 빌라도가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18:36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신 뜻은 하나님나라가 이 땅과는 전혀 무관한,
죽고 난 다음에만 갈 수 있는 저 하늘의 어떤 처소라는 뜻이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지만 이 땅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위의 두 구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어떤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 인한 그분의 통치를 나타내는 영적 실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통치는 실제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구약적 의미 뿐만 아니라 신약적 의미에 있어서도 동일하며, 영광이 임하신 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17:22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12:32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지만, 자녀들이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고 송축할 때
또는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릴 때 어떤 시기와 장소에 영광으로 현현하십니다. 그럴 경우 바로 그 시와 그 장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나라가 임했다는 사실은 하나님나라의 자녀들이 하나님나라의 법에 의해서 살 수 있는 곳이 된다는 뜻입니다.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대하5:13-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행2:1-3
앞서 언급한 “하나님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라는 말씀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고,
그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주권은 이 땅에
(이 땅이 세상신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백성을 통해서 나타나며,
그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나라(kingdom of heaven), 즉 하나님께서 왕이신 나라(kingdom of God)를 선포할 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상계를 통해서 그분의 주권적인 뜻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2) 나라와 천국의 차이는?
사복음서중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나라(Kingdom of God)가 언급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에서 천국(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나라(6:33; 12:28; 19:24; 21:31; 21:43)를 혼용하고 있습니다. 이때 천국과 하나님나라라는 용어로 인해 가장 큰 혼동이 일어나는 부분이
그 뜻이 “통치 그 자체”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통치에 따른 영역”을 의미하는지, 혹은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는지에 대한 모호함입니다.
다음 성경구절이 천국과 하나님나라가 동일한 뜻을 지닌 것을 이해하는데 실마리가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19:23-24
이 말씀을 근거로 천국과 하나님나라가 동의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은 히브리적인 표현방식인 반면 하나님나라는 헬라적인 표현방식인데,
유대인들에게 왕국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마태는 헬라적 표현방식보다는 히브리적 표현방식에 의존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호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두 개념의 기본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신학자들의 다양한 의견들 중에는
천국(Kingdom of heaven)이 ‘땅의 나라들’과 대비되는 ‘하늘의 나라’로서,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초월적인 통치 영역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천국은 이 땅의 시간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곳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보좌 위에 좌정해 계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태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늘나라에 초점을 둔 용어라면, 하나님나라의 개념에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나타내는 주된 의미와,
그 통치가 미치는 영역이라는 부차적인 의미가 모두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 천국과 하나님나라의 개념을 대면할 때는, 하나님의 통치(행위) 자체를 표명하는 주된 의미와
그 통치가 시행되는 영역(장소)의 부차적인 의미 모두를 대입하여 묵상해 봄으로써 보다 풍성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3) 현재적 나라와 미래적 나라에 대한 이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흔히 동양적 개념의 천국(혹은 천당)으로 잘못 이해해서, 우리가 죽고 난 다음 가는 이 땅이 아닌
하늘 위의 어떤 곳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 본적 없기 때문이고,
또 실제로 잘못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갈 곳이라고 믿고 있지만,
다음 구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8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11:20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9:1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12:32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그것도 곧 임하신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실 때부터 실제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하시면서 마태복음 6장에서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살지만, 그 모든 것은 천부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으며,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죽고 난 다음에 가는 곳이라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16:16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후로부터는”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실 때부터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말은 이때로부터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통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여전히 흑암의 권세 아래 놓여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구습에 따른 육체적 삶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죄를 짓거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때가 되면 이 땅에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 기간을 현재적 하나님나라라고 부르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의 기간을 미래적 하나님나라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신학자 오스카 쿨만이나 조지 래드 등은 하나님나라를 설명할 때, 현재적-미래적 개념(already but not yet)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현재적 실체이면서(마12:28), 또한 미래적 축복입니다(고전15:50). 하나님나라는 다시 태어난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요3:3)
영적인 내적 축복이면서(롬14:7), 또한 이 세상 나라의 통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계11:15). 하나님나라는 사람들이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현재적 영역이면서(마8:11), 또한 나중에 들어갈 수 있는 미래적 영역이기도 합니다(마8:11).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에게 상속되는 미래적 축복의 나라이면서(눅12:32), 또한 현재에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막10:15).
2) 임하시오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 것은 아직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기도하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승천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으로 인하여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여전히 흑암의 권세 아래 놓여 있고 우리가 그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적으로 지금 여기(now & here)에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도록 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뿐입니다. 그 일은 천사들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자녀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5:17
3) 나라가 임하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의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앞 구절이 전제되어야 하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구절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모든 통치는 그의 나라가 우리 안에 또는 우리 가운데,
넓게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나타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자신과 일터에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까요? 그 비밀은 바로 앞 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거룩히 여길
때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그분을 높일 때이며, 우리가 기도할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Thy Kingdom come!)”라고 기도하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내 삶에 “나의 나라가 끝나게 하옵소서!”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세상에 “마귀의 통치가 끝나게 하소서!(Satan kingdom done!)”라는 말과 동일한 것입니다.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좀 더 좋은 혹은 좀 더 나은 세상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을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이 바로 이 복음입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메시아이신 당신을 통해서 구약에 예언되었던 그 나라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통치 대신에
이 땅에 새로운 지도자가 나와서 다윗의 왕국을 재건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단7:22
생각해 보십시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와서”는 마침내 이 땅에 와서라는 의미이고,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성도”들은 그의 백성이며, “원한을 풀어 주셨고”는 흑암의 통치 아래서 환난, 질병, 사망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해방시켜 주셨다는 것이며, “때가 이르매”는 예수님께서 마침내 육신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얻었더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침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기 위해서 그 나라로 침노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눅4:43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좋은 소식(복음)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통치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는 흑암의 권세가 물러가고 마귀의 자녀로 전락한 인생들이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회복하고,
본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대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피조 세계 역시 본래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회복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친히 이 땅에 메시아(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인자(人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만물과 인간의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은 율법과 선지자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이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바로 자신이 메시아로서 약속하신 주(主)의 나라를 이룰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또 예수님 자신으로 인해 드디어 하나님나라가 도래했다고 선포하시며, 그 나라가 임할 때 실제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현재적 통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자는 아이러니하지만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오히려 영적 세계를 아는 귀신들이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무엇을 하실 것인지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귀신들도 악하지만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2:13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눅4:41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8:28-29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눅4:33-34
4)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요? 대부분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으며,
주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그러다 때가 되면 천국 간다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마침내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다는 것인데(다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정작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분리시켜 믿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차원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구원에만 한정하여 생각하다보니,
하나님의 나라는 죽고 난 다음에 가는 곳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다가 죽으면 육신은 사라지지만 우리의 영혼은 살아서 우주공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하늘(혹은 천당)에서
영원히 산다는 식으로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죽고 나서 가게 되는 어떤 특별한 장소로서의 천당은 성경적인 진리라기보다
동양적인 개념에 가깝습니다. 이생의 삶과 사후의 삶을 단순히 이 땅과 천당(천국)이라는 관념으로 대치시키는 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일 뿐이며,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이 종교화되고 윤리화되고 있습니다. 종교화란 삶과 분리된 채 내세의
영생복락을 지향하는 신앙으로 인해 이 세상이 단지 천국을 준비하는 곳으로 변질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나중에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려면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윤리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의하면 하나님나라는 이미 이 땅에 왔으며, 아직 우리의 육신(몸)의 생명이 끝나지 않았어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시민권은 천국(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영적인 국적은 내 육신의 삶(이생)과
죽음(내세)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이미 하나님나라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는 구원을 받은 우리가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그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나라가 없는 이 세상에서 인간적인 수고와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갈 뿐이고, 이를 통해 죽고 나서 가는 천국에서 완성된 구원을 얻게 된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요?
우리는 동시에 두 나라(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에 걸쳐 살고 있으며,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에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 구원의 완성은 바로 오는 세상(미래적 하나님나라)을 일컫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와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하나님 뜻대로 이 땅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나라에 들어와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법을 이 땅에서 적용시킬 수 있겠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만약 우리가 지금 하나님나라에서 살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이 모든 것을’ 현세에서 어떻게 더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신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성화된 삶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매일 자신과 자신의 삶터에 하나님나라가 임하였음을 선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