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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하나님께 드리자

귀를 하나님께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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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상담
“머리와 엉덩이” -True Grit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혹시 입이 예쁘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자, 손 내리시고.
그럼, 귀가 예쁘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네~ 됐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예쁜 입을 가진 사람이 있고 또는 예쁜 귀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쁜입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언변이 좋은 사람을 칭찬합니다. “어쩜 저렇게 말을 잘 할까? 나도 저렇게 말 잘하면 참 좋겠다.”라며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내담자에게 좋은 상담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었습니다.초보 상담자일 때는 내담자가 한참 고민을 말하고 있으면 내담자 말이 끝나고 나면 뭐라고 말해줘야할까? ‘어떻게 말을 해야, 무슨 말을 해야 내가 좋은 상담을 하는 걸까’하고 고심했었습니다. 그래서좋은 해결책을 내놓거나 멋진 말을 하고 나면 스스로 대견해하고 상담자로서 자질이 있는 것 같다고뿌듯해했지만 또 어떤 때는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도무지 알 수도 없을 때가 있기도 했습니다. 좋은해결책도 보이지 않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적절한 말을 해주지 못했을 때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고 ‘내담자가 나를 무능한 상담자로 보겠지’하며 낙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상담자는 말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담자들은 입이 예쁜 상담자를원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공부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상담자가 어떤 말을 얼마나잘 하느냐보다 내담자의 말을 얼마나 잘 들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내담자들은 입이 예쁜 사람보다는 귀가 예쁜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말 잘 하는 사람을 칭찬하기는 하지만 정작 예쁜 귀를 가진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합니다.

‘예쁜 귀’라고 할 때, 그저 듣기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귀가 있어도 정작 듣지 못할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가정의 저녁시간을 한 번 들여다보도록 하지요. 아내는 하루 종일 집안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남편과 이야기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신문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서얘기 좀 하자고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신문을 보면서 말을 해 보라고 하지요. 그래서 아내가 얘기를 시작하지만 남편은 계속 신문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여보, 내 말 좀 들어봐요!”라고 하자 남편은“다 듣고 있으니까 그냥 말해!”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의 감각기관이독립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남편은 눈으로는 신문을 보지만 귀로는 열심히 아내의 말을 듣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해서 더 이상 말할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상담에서 가장강조하는 것을 한 가지 꼽으라면 아마도“경청”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청을 한마디로 하자면 내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경청을 한자로 한 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傾(기울일 경)은, 그 사람을 향하는 것을 뜻합니다. 경청에는 신체적으로 내담자를 향하는 주의집중까지포함되어 있습니다. 앞선 예에서 이야기를 듣는남편의 태도에 아내가 불편함을 느낀 것은 주의집중 행동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聽(들을 청)이라는 글자는, 耳(귀 이), 目(눈 목), 心(마음 심)으로 글자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들을 청이라는 한 글자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공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상대방을 경청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해서 몸을 기울이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사람의 눈을 맞추어 바라보고 마음으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체적으로 내담자를 향하는 주의 집중과 함께 내담자의 언어적메시지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메시지도, 그리고명확한 메시지뿐만 아니라 불명확한 메시지도 포착하고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경청하기를 흔히들‘세 번째의 귀(third ear)로 듣는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귀는 두개인데, 그렇다면 세 번째 귀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세 번째의 귀는 마음에 있지요!

어느 변호사가 강연 중에 하는 말을 들은 기억이납니다. 처음 변호사가 되었을 때는, 변호사라는사람은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무기를 장착하고 콜로세움에 들어가서 사자와 호랑이와 맞서서 열심히 싸워야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승부사, 검투사로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우연히 상대편 고소인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사건이 예상치 않게 잘 해결되는 경험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변호사는 글레디에이터(gladiator)가 아니라 동행자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변호사는, 갑자기 휘말린 사건으로 깜깜한 동굴에 갇힌것과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안내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나마 그 동굴에 대해 조금은더 알고 있기에 함께 도와가며 그 동굴을 지나가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말로 하면 귀로듣고 마음으로 얘기하면 마음으로 듣는다.”

지금까지 경청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부터 더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경청의 귀를누구를 향해 열어 둘 것인가’입니다. 하나님은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7

 

 

대부분 하나님의 목소리는 소리침이 아니라 속삭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또한 우리가 그음성을 듣기 원하십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19:12

 

 

이처럼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에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고불평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가 순종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사무엘이 그러했던 것처럼“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대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삼상3:10  

 

우리는 흔히, 믿음이 커져 가는 것을 하나님과의친밀함이 깊어져 가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아버지로 가깝게 느끼게 되고 그 분의 속삭임도들을 수 있게 되는 관계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속삭임을듣기를 원합니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않지만, 하나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때 그세미한 음성은 내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변혁이 될 것입니다. 그 속삭임을 듣고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향해서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면 우리의 영이 울립니다. 한 번만의 속삭임으로도 모든 것이 변하게 됩니다. 그 한 번의 작은 음성만으로도 큰 사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됩니다. 눈물 흘리게 됩니다.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녹아내리게 됩니다.

그분의 음성을 매일 매순간 들을 수 있다면…. 바람 한 점에도, 건반 소리의 그 울림 안에서도, 찬양의 목소리 안에서도, 지는 노을과 구름 빛안에서도, 주님 안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주잡은 손과 눈빛에서도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하지만 다른 소리들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주변의 소리, 두려움의 소리, 불신의 소리, 낙담과 절망의 소리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열왕기상 19장에서 절망에 빠져서 굴속으로 들어간 엘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이제 그만 어두운 곳에서 나오라. 비탄, 눈물, 낙담, 절망에서나오라!”고 속삭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두운 곳에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수렁에서 우리를 건지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속삭임입니다. 지금불, 광풍, 지진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의 속삭임한마디’가 필요한 때입니다. 사무엘의 귀를 달라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