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LIFE &
상담
고슴도치의 겨울나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매우 추운 어느 날 밤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피하려고 떼 지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추위를 피하기위해 고슴도치들이 가까이 붙을수록 서로 뾰족한 가시에 찔려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멀찍이 떨어져 자리를 잡으면 견디기 힘든 추위가 엄습해 왔습니다. 그래서 고슴도치들은 밤새도록 붙었다 떨어졌다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마침내 너무 아프게 찔리지도 않으면서 춥지도 않게 겨울밤을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슴도치들이 서로를 찌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춥지도 않게 겨울밤을 지혜롭게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적당한 거리’를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가족 상담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흔히 ‘경계선(boundary)’이라고 합니다. 이 경계선은 간단히 말해서 세 종류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모호한 경계선입니다. 경계가 너무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아서 나와 타인 사이의 구분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경계가 무너져 있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경계가 무너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친구 같은 부모라고 여기게 하는 것도 좋지만, 부모가 부모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녀가 부모의 영역을 침범해서도 안 됩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 인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유와 겸손이 지나치게 성장하여 적극성이나 독립심과 같은 자질들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무력함 때문에 다른 사람에 의해 조종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경직된 경계선입니다. 경계가 너무 경직되고 막혀있어서 그 어떤 것도 드나들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경계가 너무 딱딱해져 있으면 서로가 교류할 수 없게 됩니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없고 의사소통이 단절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부모와 자녀 사이에 경직된 경계선은 서로를 너무 외롭게 만듭니다. 또한 적극성과 독립성은 그 자체로는 좋은 자질이지만, 다른 쪽에 있는 자질인 사랑, 온유, 겸손 등이 성장하지 못해 균형을 잃게 되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독단적으로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명확한 경계선입니다. 명확한 경계선을 가진 가족은 각자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면서도 필요할 때면 언제나 서로 지지하고 협동합니다. ‘나’를 잃지 않는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호하지도 않고 경직되지도 않은 명확하고 건강한 경계선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이러한 거리조절 문제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느슨하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은 경계선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한편의 광고가 떠올랐습니다. 혹시, 기능성 의류 광고 보셨는지요? 등산복이나 스키복을 기능성 의류라고 하는데, 이러한 의류들은 특수한 천으로 만들어집니다.그래서 이 의류 광고들은 “땀은 배출하고 물은 막아 주고!”라는 카피를 내세웁니다. 기능성 의류는 기가 막힌 경계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땀을 배출할 수 없을 만큼 경직되어 있지도 않고 물을 막아내지 못할 만큼 열려있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능성 의류와 같이 때로는 허용하고 때로는 차단하는 지혜롭고 유연한 경계선은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좋은 아버지이신 우리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망가뜨릴 만큼 규율이 없으신 분도 아니시고, 그렇다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경직된 분도 아니십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시89:1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17
하나님 아버지는 약한 자에게는 강함이 되시고 강한 자에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죄인일 때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우리가 행위의 의를 내세울 때는 우리의 죄된 모습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5:21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녀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그의 안에서 자라갈 때 모호하지도 않고 경직되지도 않은 경계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1:4
신부의 순결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동시에 용사의 강인함과 용맹을 지닐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특성이 우리 안에서 조화롭게 발휘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행17:28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장 적당한 거리를 찾아낸 고슴도치들처럼, 지금은 비록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자라가고 있기에 우리의 모습이 온전해질 것을 기대하고 바라봅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 관계에 있어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나와 너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찾고 우리 내면에 있어서는 온유·겸손과 적극성·독립심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