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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자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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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자유 1

2015년 11월 3일 월요말씀치유집회 메시지


 

 

지난주에 앞으로 주기도문에 대해서 함께 나누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세 분을 상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상담을 통해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이 부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우선 “영혼의 자유” 라는 제목으로 세 번 정도 말씀을 나누고, 주기도문을 마지막으로 올해를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영혼의 자유”에 대해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얻어내는 삶과 나타내는 삶” 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에 아주 신실한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 형제는 대학부부터 모임의 회장을 했고,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그는 졸업을 하고 난 후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또 열심히 일을 해서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직급이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직급이 올라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지만, 밤 10시나 11시가 되어야 퇴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사원일 때는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도 교제하는 시간도 많았고 교회 활동도 여러 가지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시간이 없어 자신이 하나님과 멀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니까 삶의 질도 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보다는 짜증이 나고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두절미하고 “형제님이 평사원일 때는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시간이 8시간 밖에 없었지만, 직급이 높아져서 하루에 12시간 일한다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시간이 12시간이나 주어졌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형제가 정말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고 또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형제가 시간적으로 못하는 것보다는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과교제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보고 교제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중생했다면 그분께서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가 그분께 드린 만큼 그분께서 무엇인가를 베푸실 것이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있어야만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고 나도 영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들 많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은 내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만, 또 시간을 일정한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야만, 또 내 일의 일부를 포기해야 만이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정말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모든 생활은 나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육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통해서 그분의 통치권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만이 교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더 영적이고 더 성숙한 교제는 그분이 나의 일상 삶에 나타나시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교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해서 뭔가 하나님 앞에 따로 떼어 놓고 나가야만 하고 내 자신 뭔가를 포기해야 만이 정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더 성숙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 시간뿐만 아니라 내가 매일 매일 보내는 이 평범한 시간, 지금 여기서 보내는 이 시간동안에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이 하나님에 대해서 구약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통치하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하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그러한 방식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반대로 지금 여기에서 나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고, 당신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바로 하나님 자녀의 삶이고 하나님나라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어디 거룩한 곳에 나아가서 시간을 떼어놓고 당신을 포기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십시오. 마귀가 통치하고 있고 마귀가 틈을 노리고 있고 믿지 않는 자들이 나를 대적하는 바로 거기, 그 장소, 그 시간에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장소에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능력 주기를 원하십니다.

진정한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세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자기의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상에는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해야 하고, 나를 대적하는 자와 함께 해야 하고, 내가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그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직면하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분의 권세와 능력을 맛본 사람들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원합니다. 그곳에서 전쟁을 벌이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나타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 전쟁은 내가 하는 전쟁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전쟁입니다. 내 안에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는 사실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17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지 죄 사함을 주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서 now and here 바로 이 세상,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그 터전, 그 삶터, 그 일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그 세상이 하나님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교회를 주신 이유는 바로 그 세상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교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내 삶터, 내 일터, 내 직장, 내 가정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아닌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하나님이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킬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기를 그렇게도 소원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4:3-5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이어받았다면 그 아들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이제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갈4:6-7

 

 

유업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주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부모의 자식으로서 상속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업은 새로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부모께서 이루어놓은 것을, 다 되어 있는 것을 지속하는 것이 유업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아멘. 유업이 무엇입니까? 바로 유업이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축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바로 유업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유업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생명의 문은 협착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가지 않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헌신과 행위와 공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의 태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8:36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자유를 누리십시오. 이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신 것을 나타내느냐 못 나타내느냐는 우리한테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믿음으로 이 땅에 이 현실에 나타내느냐 나타내지 못하느냐 이며, 그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가 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할까요? 한 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정말 말씀은 분명하게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자유함을 누리지 못할까요? 제 자신부터 한 번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얻은 결론은 첫째는 교만함입니다. 둘째는 두려움입니다. 셋째는 불신입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흔히들 우리가 세상적으로 이야기할 때의 남보다 내가 더 잘났고 또 잘난 체하는 것 그것이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에서 교만은 피조물인 우리가 자신의 관점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과 나를 대등하게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린 게 없는데 내가 하나님께 헌신한 게 없는데, 어떻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이 바로 하나님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우습게 보는 교만함이란 것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3:1-5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갈1:6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복음을 듣고도 이 복음을 잃어버린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5절에서 정말 한탄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것이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공로, 행위, 그것을 통해서 내가 구원 받았다고 고백했나요? 아닙니다. 오직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 보아야 합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선한 행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멘.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을 때의 구약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영생, 영생, 영생을 누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영생이기 때문에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영생이신 하나님의 생명이 지금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영생을 누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는 자,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어떤 조건도 필요 없습니다. 어떤 행위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약속하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자녀가 된 것이 너희 행위냐 공로냐 율법을 지켜서냐. 아니면 예수님께서 그 복음에 대해서 선포하신 것을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냐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분명히 구원을 얻었을 때 우리의 행위도 아니고 공로도 아닌 것 알고 있습니다. “내가 구원 얻었습니다!”라고 소리칠 수 있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입니다.

3절, 이미 우리의 옛 본성, 육적인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옛 본성에 의해서 형성된 우리 마음의 생각들, 육적인 사고체계에 묶여서 그것이 나라고 생각하고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다시 육체로 마치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본질은 하나님 안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아멘.

4절, 신약성경에서 “괴로움을 받았느냐”라는 이 말은 해석이 가장 분분한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헛되이 받았느냐” 이 헬라어는 부정적인 경험에도 사용됩니다. 그래서 이 성경의 말씀은 부정적인 경험에 대해서 서술한 것입니다. 또 많은 학자들은 긍정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경험은 너희가 구원 받고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 당시에 유대인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얼마나 괴로움을 많이 받았느냐, 그 많은 괴로움이 헛되냐 정말 그것이 헛되냐, 그렇게 복음을 지키려고 애쓰면서 고난과 환난을 받았던 그 괴로움이 헛되냐. 그런데 그 괴로움을 그렇게 받으면서 지켜왔던 걸 왜 이제 바꾸려 하느냐, 왜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이 말씀입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경험으로 말하자면 괴로움이 아니라 너희가 누렸던 그 축복이 엉터리냐, 정말로 엉터리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지금까지 그 경험한 놀라운 축복들이 엉터리냐 정말 엉터리냐, 그건 뭐냐 라고 말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부정적인 경험이든 긍정적인 경험이든 우리 다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헛되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5절,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여기에 주시고 능력을 행하시고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지금 여기서 오늘 이 시간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 능력을 행함으로 너희가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는 그 일이 율법의 행위냐 혹은 듣고 믿음이냐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행위와 여러분의 공로와 여러분의 처지와 상관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유업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고, 오늘 여기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여러분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스스로도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품꾼으로라도 쓰임 받기를 원해서 그 아버지의 집을 갔을 때에, 상거가 먼데도 아버지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달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껴안고 뽀뽀하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였을 뿐만 아니라, 더 기가 막힌 것은 새 신발, 새 가락지, 새 옷을 입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아멘.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이 마음을 돌려서 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향할 때에 아버지는 상거가 먼데 여러분을 향해 달려오십니다. 여러분을 껴안으십니다.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딸, 내 사랑하는 아들 잘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잔치를 베풀 뿐만 아니라 우리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오신 여러분이 어떤 행위, 어떤 공로, 어떤 헌신이 없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유업을 이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잔치를 베푸십니다. 새 신발, 새 가락지, 새 옷을 입히십니다. 그게 복음이에요. 그래서 은혜라는 거예요. 세상에 어떤 종교도 이것을 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법도 이렇게 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은혜라는 겁니다.

저는 제 삶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매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뭐냐? 제단에 불을 안 꺼뜨리는 겁니다. 하나님 영광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매일 살아가면서 뭐가 필요하냐? 말씀, 믿음, 기름 부으심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면 산다는 건 뭐냐? 은혜에 자라가는 겁니다. 은혜에 강해지는 겁니다. 더 큰 은혜를 누리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더 큰 은혜를 누릴수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전부를 차지하시고 하나님이 내 전부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우리가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는 것만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누리면 누리는 것만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아멘.

이제 오늘 말씀의 결론을 한 번 내려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영혼의 자유함을 누려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기도할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우리의 삶 전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친밀한 관계는 기도할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24시간 삶 전부로 그분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아멘. 깊은 교제는 내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오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나타나시도록 내 자신을 드리는 것이 교제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정말 놀라운 교제는 내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특별한 장소로 가는, 특별한 시간을 떼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now and here 여기에 내 안에 오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나타나시도록 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교제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해야 만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거라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이미 받았습니다. 이미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은혜로 우리에게 모든 걸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받으십시오. 아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뭔가 받아야 줄 수 있다라는생각을 버리십시오. 여러분이 거룩한 부담감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부어주십니다. 아멘. 여러분 이 놀라운 비밀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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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님 제가 주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들었지만 주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내 헌신, 내 공로, 내 행위로 주님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 나의 행위, 공로, 태도와 아무런 상관없이 주님은 나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제가 그것을 믿음으로 행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자녀입니다. 저는 당신의 유업을 이어받는 자입니다. 주님 제가 그 은혜를 누려야 만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제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제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