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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와 산골짜기

산꼭대기와 산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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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상담
산꼭대기와 산골짜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 각자 수식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장로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또 어떤 집사님은 인자하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각자의 삶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모습을 나름대로 표현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가게 집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가게집 딸이라 과자 맘대로 먹을 수 있어 좋겠다며 부러워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자 저는 우리 아버지가 피자가게 주인이기를 바랬습니다. 더 나이 들어서는 우리 아버지가 백화점 주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누군가의 아들딸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면서, 나에게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그 모든 아버지를 합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나의 친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겨울입니다. 올 여름, 유난히 더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더울 때는 추운 겨울이 상상 조차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늘 변화가일어납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계절을지나게 됩니다. 인생의 눈물의 계절과 웃음의 계절, 믿는 자에게는 승리의 계절과 실패의 계절이또한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시간이 있고 또 내려가는 시간이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험난한 계절을 맞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 같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제자들도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폭풍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그 기적의 자리에 계속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고 재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마14:22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마14:24

 

 

제자들은 최고의 기적의 자리를 경험한 후에 죽음의 험난한 상황에 당면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실수해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씨름하는 가운데도 하나님은 영광받으십니다. 또한 꼭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폭풍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가 있습니다. 영적 전쟁이 분명히 있습니다. 도적은 죽이고 훔치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의 가운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순간 우리는 어두움의 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폭풍을 견디고 나면 기적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폭풍을 지나온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보지 못할 기적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사탄이 없어서 우리를 괴롭히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만약 적이 없다면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할 길도 없고 승리를 맛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골짜기가 없다면 산꼭대기의 시원한 바람을 즐길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폭풍 가운데 무서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폭풍을 잠잠케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폭풍가운데서 놀라운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제자들은 폭풍을 겪기 전까지는 예수님이 진정으로 누구이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나병환자를 치유한 것도, 소경을 눈뜨게 한 것도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알게 하지는 못했습니다.그러나 폭풍을 지나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마14:33

 

 

예수님에 대해 듣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것을 폭풍을 지나면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폭풍 가운데 우리는 주님이 얼마나 신실한지 알게 됩니다. 폭풍으로 죽을 것 같을 때 눈을 들어 앞을 보면 주님이 걸어오시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우리가 주님을 볼 수 없을 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내가 주님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주님이 나를 못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폭풍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폭풍가운데서도 제자들은 노를 계속해서 저었습니다. 폭풍을 지날 때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한손에는 믿음을, 한손에는 찬양을 가지고 계속 노를 저어야 합니다.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절망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처지로 주님이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폭풍 사이로 주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가 계속 해서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2:10

 

 

복음은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메시지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이고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라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딛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가 엉망으로 만든 낙서도 명작으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에 옛 본성에 기초한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거룩한 본성이 더 많이 발현되도록 믿음으로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43:18  

 

 

젊은 사람들은 미래를 어둡게 생각하고 불안하기가 쉽습니다. 좋은 직장은 이미 다 차버렸고 좋은사람은 다 결혼해 버렸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결혼을 하지만 나는 이미망가진 사람이나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만날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좋은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속삭이는 것은 원수의 음성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영화를 본 후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요즘 나오는 미래 영화들은 하나같이 좀비가 나오는 걸까?” 미래에 대한 영화는 대부분 어둡게만 그려져 있습니다. 미래의 지구는 핵전쟁이나 외계인의 침입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몇 명만 살아서 폐허속의 지하에 숨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나머지 사람은 뭔가에 감염되어서 죄다 좀비입니다. 세상이 그리는 미래는 그렇게 암울합니다. 그런 우울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서 나의 미래는 어둡고 절망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가 어둡고 절망적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원수의 속임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자들이며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을 자들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3:29  

 

 

물론 우리도 문제가 있고 주저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사도행전의 말씀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구걸하고 있을 때 요한과 베드로가 지나가다가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는장면처럼, 우리가 주저앉아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요한)과 믿음(베드로)이 지나가다가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성문을 지나 은혜의 삶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때가 있지만 어떤 시기에는 지친 걸음으로 걸어가는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잠깐의 체험이나 주일 하루 교회가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모든 시간을 그분과 함께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 대륙을 걸어서 횡단한 사람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 사람은 미국을 걸어서 횡단하면서 사막도 지나고 눈보라도 겪었고 강도도 당하고 자동차 사고가 나기도 하고 강도를 만나 칼에 찔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난관을 지나온 그에게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오랜 여정에서 횡단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너무나 의외였습니다. 그는 ‘신발 속의 모래’ 라고 했습니다. 그를 좌절하게 만든 것은 강도나 죽음의 공포, 극한의 추위나 더위도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커다란 파도나 역경보다는 일상의 작은 염려가 우리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는 우리 영의 신발에 모래를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일상의 걱정과 두려움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하나님과의 동행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 때문에 동행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마귀는 우리가 기도회에서 큰 영적체험을 하더라도 콧방귀도 안 뀔지 모릅니다. 하지만 원수가 정말 싫어하는 것은 매일매일 주님과 동행하면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을 가지는 것은, 예수님은 발을 우리 스스로 씻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13:8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13:15

 

 

예수님은 우리 앞에서 수건과 대야를 들고 말씀하십니다. “네 발을 내가 씻길 수 있도록 해라. 내가 너의 두려움을 씻어줄게. 내가 너의 발을 씻어줄게. 그러면 너는 너처럼 산골짜기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주님께 내려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삶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일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산꼭대기에서나 산골짜기에서나 말입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4: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빌4:23  

 

 

우리가 산꼭대기에서나 산골짜기에서나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념하는 12월이라 더욱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여서 좋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여서 좋습니다.
예수님,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이 나의 보혜사여서 좋습니다.
성령님, 아버지사랑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