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LIFE &
건강
의사를 만나다 – 너는 의사를 누구라 하느냐
한양의대 교수 김석현
지난 호에서 우리는 우리를 파고드는 두려움과 불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고 당당하게 병원을향해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를 외치며 자신 있게진료실 문을 들어섭니다. 그리고 의사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동안 검사했던 온갖 자료들을 들이대며, 내가 이미 위험한 상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의 믿음과 눈앞에 펼쳐진 현실 사이에 너무나 차이가 나니 당황하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이 순간에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제대로 작동시키느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잠재의식으로 무엇이 내려가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것입니다. 내가 나의 믿음과 눈앞에 펼쳐진 현실 중 어디에 내 마음을 두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알고 나서 전공 공부는 뒷전으로 한 채 말씀 공부에만 매달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그 전에 알고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완전히 새로운 진리를 알아가면서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같은 기분으로 하루하루 말씀과 은혜에 젖어 지내고 있던 중, 갑자기 제 머리 속을 파고든 생각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이렇게 지내는 나를 보면 내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뭐라고 할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생각은 제 마음 속의 평안을 깨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에대한 답이“이거 봐. 정신 차려. 지금이 그러고 있을 때야? 현실을 직시하고 본업에 충실해야지. 종교도 좋지만 현실을 무시하면 안 돼.”라는 핀잔이고 비난일 것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제 친구 중에 저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저도 분명히 그렇게 충고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제 머리를 치고 지나간 두 가지 단어가 있었는데, “현실”과“본업”이라는 단어였습니다.그 단어를 생각하면서 제 입가에는 다시 미소가번졌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에 저에게는 현실과 본업이라는 단어의 뜻이그 전과 다르게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현재 내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이 현실이아니라 어렴풋이나마 성경의 말씀이 현실이라는것을 알아가고 있었고, 의사가 본업이 아니라 제가 누린 이 구원의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전도자가 제 본업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 다시 진료실 장면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의사는 지금 여러분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있습니다. 이 때 여러분은 어떤 현실 앞에 봉착해있는 것인가요?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나요? 당신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의사 앞에 앉아있나요? 중한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나약한 인간의 모습인가요? 아니면 이미 죽음의문제를 해결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인가요?의사가 보기에 사형선고에 가까운 소식을 듣고충격을 받고 멍해져 있는 통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환자인가요? 아니면 이런 심각한 이야기를 듣고도 별로 요동이 없는 좀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환자인가요? 물론 후자의 모습을 보이더라도 의사는 아직 이 환자분이 현실을 파악을 못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요.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치료받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입니까?아니면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자신의 장례식을바라보고 있습니까? 이것과 비슷한 경험을 해 본분들은 우리가 좋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얼마나 쉽게, 그리고 얼마나 풍부하게 부정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지를 알고 계실 겁니다.정말 그렇습니다. 그냥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생각은 끝도 없이 불안과 두려움과 슬픔과죄책감과 후회만이 가득한 비극 속으로 우리를끌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의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온 몸에 기운이 빠져 부축을 받으며진료실을 겨우 빠져나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있어서 현실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꿈속에 살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진짜현실로 돌아와 질병으로 고통 받아야 하는 자신을 직시하게 된 것입니까? 늘 아니기를 바라고성경의 말씀을 좇았지만 결국 현실은 성경 속에있는 것이 아니고 내 삶 속에예전부터 있던 그대로 있는 것입니까? 이때가 바로 나는 무엇을 현실이라고 믿는가를 철저하게 검증 받는 때입니다.
이 문제와 함께 우리가 반드시점검해야 할 문제가 바로 우리가 의사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의사에게 부여된 권위는 과거에 비해 현재는 그야말로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이미지는 언제부터인가 간 곳이 없어졌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만이목적인 직종 중의 하나로 취급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닙니다. 왜 의사라는 직종이 그런 식으로 평가를받는지는 여기서 이야기할 주제는 아닙니다. 이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의사가 그렇게 좋지 않은 평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생명이 경각에 달린환자 입장이 되었을 때는 여전히 의사를 다르게볼 수밖에 없는 환자심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환자 자신의 나이나 의사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환자 입장이 되면 의사를 권위자로바라보게 됩니다. 부모처럼 여기기도 하고 어떨때는 자신의 병이 아무리 중하더라도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전능자로 여기게도 됩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이 의사의 손에 내 목숨이 달려있다고 생각하게도 됩니다. 물론 이렇게 여기는것에 부정적인 요소만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인정해 주고 믿어주는 사람과 연합할 때 평소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게 됩니다. 따라서 의사를 존중하고 믿어주는 것은 좋은 치료결과를 보기 위해 어쩌면 필수적인것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담당의사가자신을 틀림없이 치료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사실 이러한 시선을부담스러워 합니다. 그 이유는 질병이 치료되는과정 중에는 의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과정들이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당신이 아무리 명의라고 해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지 않느냐며 무시하고 의심하는 경우가 거기에해당합니다. 그래서 의사가 하는 여러 가지 일에대해 일일이 알기를 원하고 자세한 설명을 요구합니다. 물론 의사에게는 치료과정에 대해 환자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경우는 그런 정상적인 신뢰의 관계가 아닌,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의사의 모든 조치를 의심하고 점검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의 권고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하며,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상태입니다.그러다보니 의사의 말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고나를 겁주어서 치료를 받게 하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의사를 신뢰하는긍정적 전이를 보입니다. 이런 심리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환자가 되어 의사 앞에 있을 때 의사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의사가 여러분의 치유자입니까? 의사가 여러분의 문제의 해결자입니까?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의 현실은 철저히 인간중심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무엇도 약속할 수 없는, 그리고 그 능력이 제한적이고 여러 가지 변수 앞에 속수무책이며, 나와 똑같이 타락한 육신을 입고, 육신의 소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의사라는 한 인간-비록그가 치료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나와는 비교가안 될 정도로 전문가이지만-에게 의지할 수밖에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 상황을인간중심적 입장에서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그곳에는 당연히 희망도, 평강도, 기쁨도, 감사도 있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내 의지로 그것들을 붙들어서 그런 것이 있다고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 여러분이 오직 예수님만이치유자시라는 것을 믿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가득하도록 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내 앞에 펼쳐진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모든 생각과 감정이 내 중심이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것들이 나의 것이 되고, 하나님나라의 희락과 평강이 다시 나를 사로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하늘에서 해결된 문제를 내가 이 땅에서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분들이 그게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게 그렇게 되느냐고 쉽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쉽게 하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중요한 사실과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오늘 이 순간에 내가 암 말기라는진단을 받고 앞으로 여명이 6개월이 안 된다는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발가벗겨 낱낱이 드러내는 순간이라는 점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어쩌면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마음이 어떤 것을 현실이라고 바라보고 있느냐라는 입장에서 그 시각이 한 가지이냐 또는 두 가지이냐라는 점을 묻는 것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내가 보고 있는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느냐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로 받아들이다가, 즉 내가 이미 나음을입었다고 믿다가, 어떤 순간에는 다시 이러다 이병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바로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는“예수님께서 나의 치유자이시므로 내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하다가도 그 생각은 온데간데없이“의사가 이 병은 못 고친다고 했으니 이제 나는 의사 말대로 6개월 안에 죽는구나….”생각한다면 그 때 우리는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1:6-8
두 마음을 품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너는 두 마음을 품었느니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이다. 너는 내게 버림받았다.”라고 말씀하실까요? 어느 목사님은 설교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유혹에 굴복하는 것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배우지 않는 것에 대해 훨씬 더 슬퍼하십니다. 그분의 구원 능력이 신뢰받지 않았다는 사실로 인해 그분은 더 아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는 것보다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않는 것 때문에 더 아파하십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은 그의 삶에서 이렇게 고백하는 자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치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말고는 다 누리도록 하셨던 것처럼, 두 마음만 품치않으면 모든 것을 은혜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 두마음을 품음으로써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되는그 사실에 너무나 마음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하지않음으로써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정말 슬퍼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 마음을 품고 있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아버지를 슬프게 만든 자식의 입장으로 진심으로 잘못을아뢰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그리고 다시 일어나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자식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를 신뢰하며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다 이루신 일들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실체로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약4:8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나를 가까이하라! 그리하여 너희가 품은 두 마음 중에서 나를선택하여 마음이 성결케 되도록 하라! 그리고 그곳에 내가 거하도록 하라! 말씀하십니다. 그 분은우리가 어느 때건 다시 일어나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두 마음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만을 마음에 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사가 하는 말을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가지고 연구한 결과들, 그리고 의사 자신이 살면서 겪어온 일들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불구하고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암 몇 기의생존율이 몇 달이라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통계적인 수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절대불변의 수치가 아니라 연구대상의 숫자, 치료법, 연구방식에 따라 변하는 수치일 뿐입니다. 그것은진리가 아닙니다. 세상의 법칙으로 볼 때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얼마라고 이야기하는 것 이상이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법칙 아래에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나라의 법칙에 적용을 받으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지식으로 보자면 내 상태가 이렇다고 의사들은 이해하고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통계수치라는 것은 집단적으로는 의미가있지만 각 개인의 경우에도 반드시 의미가 있는수치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즉, 암 4기면 평균 생존율이 3개월이지만 이것이 내가 암 4기라고 해서 반드시 3개월 살도록 정해져 있다는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3개월도 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3개월이 아니라 훨씬 더 길게 살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의사들은 평균에 가까운 수치에 대해서는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평균에서 많이 벗어나는 결과에 대해서는 그저 예상 밖이라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생각하며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설명할 마땅한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땅의 시각에서도 이렇게 불분명한 일일진대 하나님나라의 법칙 아래서 그 숫자는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의사는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치유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하나님의 도구인 것처럼 의사는 하나님이 우리의치유를 위해 쓰시는 도구입니다. 그 도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 도구를 사용하시는 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도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도록 믿음으로 바라보시며 지원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의 권세 앞에서 내 마음이 염려, 걱정, 두려움으로 둘로 갈라지지 않도록, 오직 하나님만을 품도록 회개하며 겸손히성령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