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LIFE & SNS
청년(청소년)들과 소통하는 SNS
서울도시가스(주) 사업개발 팀장 박준환
여러분은 하루에 스마트폰을 얼마나 들여다보시는지요? 혹시 아무 이유 없이 몇 번이고 열어보시진 않는지요? 한 리서치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이유 없이 스마트폰을 열어보는 횟수는 하루에 10~20회가 24%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동일한 비율로 31회 이상을 보는 그룹이 있다고 하는데, 이 결과를 받아들이실 수 있는지요? 모바일 기기가 우리의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외형적인 증세 말고도(목디스크, 안구건조증) 우리가 경계해야할 것은 대화의 단절로 인한 세대간의 불신 현상입니다.
자아가 정립되고 독립심이 강한 10~20대 시기에 스마트폰은 일종의 탈출구나 친구의 역할을 해줍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으며, SNS를 통해 고민을 나누거나 감정을 표출할 수 있기에, 스마트폰은 부모보다도 나를 더 잘 알아주는 필수품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의 자녀·조카·동생 또는 후배들에게서도 이런 청년(청소년)의 모습이 타나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들의 고민거리를 얼마나 이해하고 계신지요? 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시는지요?
미래의 리더들이 지금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나 애써 외면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8BRyNhOO8c0)
통계청이 개신교 인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젊은 층으로 분류되는 10~24세의 개신교 인구가 10년이 흐른 후 20~34세가 되었을 때는 이 연령대의 개신교 인구 감소율이 전체 개신교 인구 감소율보다 4배나 높았다고 합니다.
교회를 다닌 경험이 있는 대학생들에게 기독교를 떠난 이유를 설문조사한 결과,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가 들어서(34%), 교회 밖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이어서(28%), 율법적이고 강압적이어서(15.7%), 교회세습과 헌금남용 등 비도덕적인 모습이 싫어서(15.1%)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그림1].
[[그림1] 대학생들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
지금 그들은 교회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뿐더러,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여러 채널을 통해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말을 듣고만 있을 것인지, 무조건 잘못된 생각이라 정죄할 것인지. 아니면 이들의 연약함과 쓴뿌리를 들여다보고 이의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다가갈 것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잘쓰면 약, 못쓰면 독
청소년 중 SNS 계정을 보유한 이들은 전체의 77.1%라는 통계 수치가 있습니다 (2013 청소년 매체이용 실태 조사, 여성가족부). SNS 이용률은 20대가 가장 높고, 다음으로 10대의 순으로 소통의 중요한 채널이 되었습니다[그림2]. 학업으로 인해 바쁜 시간 속에서 표현의 자유와 소통의 창구가 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만큼 부적절한 사용 사례도 많다는 의미가 됩니다.
(http://home.ebs.co.kr/ebsnews/menu5/schoolNewsView/10207281/N)
[[그림2] 인터넷이용실태 조사보고서(2012)]
사실 범법적이고 부정적인(폭력적, 비판적인) 언행을 글이나 사진으로 SNS에 올리는 청소년들은 소수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친구로 맺어진 모든 이들에게 퍼지게 되어 원하지 않더라도 보게 되어 본인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 고2 남학생의 말) “미성년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그런 게시물들이 올라오기 때문에 기분이 약간 불쾌하기도 한데, 그런 것들을 (계속) 접하다 보면 신기하고 호기심으로 그런 걸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과 사용의 제제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억압할수록 더욱 찾기 힘든 곳으로 숨어들어가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것이 인간의 모습일 겁니다. 좀더 근원적인 문제는악한 컨텐츠가 만연한 사이버 공간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이들을 나무라면서 본인은 정작 변화되지 못하고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의 문제로 봐야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청소년들이 청년의 시기에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그들 자신에게 있기보다는, 크리스천임을 자처하는 기성세대가 교회·가정·직장에서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에 있음을 볼 때, 서로의 연약함을 나누고 더욱 성령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되는 소통이 절실합니다.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다행이도 요즘의 기성세대들은 자녀, 형제, 선후
배 간에 전화나 단문자(SMS) 외에도 카카오톡을 통해 자주 소식을 전합니다. 좀더 소통을 잘한다는 분들은 ‘밴드’ 같은 ‘사적 SNS 어플’을 통해 친지나 동문 간에 사적인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같은 또래 간에 이만큼 좋은 소통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대를 뛰어넘어 청년(청소년)들과 소통하는데 SNS가 좋은 도구가 됨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위치에 서서 생각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내가 그들에게 건넨 말 한마디와 그동안 편하게 주고받았다는 대화들 속에 나의 마음이 진심으로 전해진 것인지, 아니면 감시하고 관리하거나 그저 일상의 인사로 그친 것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림3].
[[그림3] 나에게는 사랑, 당사자에게는 구속]
연애의 감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SNS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당신은 그 사람이 내가 보내는 한마디 대화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내가 올리는 사진이나 문구에 어떤 감동을 느낄지 몇 번을 생각하고 보낼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된 우리의 가족·친지·동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가운데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자녀가 지금 나의 자녀요 조카요 동생이요 후배들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히2:11
질풍노도의 시기, 사회비판을 많이 하는 시기로만 그들을 정의하기에는 어두움 속에 고립된 청년의 때를 이미 겪은 선배들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내 눈에는 그들이 탕자처럼 보일지라도 돌아온 탕자의 모습을 그려보면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달려 나가서 포옹하고 입맞추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시는 조건 없는 아버지의 사랑, 그 사랑으로 나와 그들이 연결됨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15:20
인터넷 세계(사이버 세계)의 기본 사상에는 모두가 수평적인(평등한) 관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SNS를 통해 대화할 때에 따뜻한 배려와 존중의 마음으로 말을 건넨다면 -존댓말을 쓰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담은 존재로 생각할 때에- 청년(청소년)으로부터도 존중과 감사의 메시지를 받을 것입니다. 말하기보단 듣기를, 지시하기보단 해결책을 같이 고민하는 하나님나라의 지혜로운 동역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8
자녀의 안전한 귀가와 현재 위치확인을 위해서 필요하던 스마트폰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소통보다는 감시와 관리의 도구였음을 인정하였으면 합니다. SNS를 통해 진정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말을 듣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와 후배들을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시면 그들의 처지와 인격에 상관없이 귀하고 사랑스런 존재가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SNS에서도 마음껏 축복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에 당신의 자녀·조카와 후배들에게 카카오톡 등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보시지요. 내 생각과 감정으로 대했던 일들을 진심으로 사과하며, 그들의 인격과 상관없이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보시지요. 우리의 청년(청소년)들이 차세대 리더로서 이 땅의 각계·각층에서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으로 그 영광을 드러내는데 온전히 쓰임받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