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낳고자 하느냐 II

네가 낳고자 하느냐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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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ing & Building
네가 낳고자 하느냐 II

 

산부인과 전문의 메디플라워 산부인과·자연출산센터 원장 정환욱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는 임신을 했다. 생명을 잉태하는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자 선물이다. 주님 안에서 남편과 함께 하나님 원하시는 가정을 이룰 꿈을 꾼다. 그러나 우리는 한 편으로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 또한 경험한다. 잘못되면 어쩌나, 고통을 감내하고 내가 잘 낳을 수 있을까. 모유수유와 육아를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부모로써 잘 할 수 있을까.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생명이시고 부활이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자. 킹덤빌더는 이 모든 은혜를 누리기만 하면 된다. 모든 과정은 주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탄생의기쁨을 맛보기만 하면 된다.


지난 호에서 필자는 ‘임신과 출산은 질병이 아니라 한 생명이 태어나는 생리적 현상이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갖고 주변 가족과 의료진의 지지를 받은 산모는, 이 말의 뜻을 몸으로 알게 된다는 것을 지난 7년간 의료 현장에서 직접 보아왔기 때문에, 출산을 앞두고 두려움이 많고 겁을 내는 산모에게는 늘 힘내라고 격려를 하며 이 말을 한다. 그리고 날마다 이 말을 믿고 용기를 낸 부부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접하는 축복을 누리기에, 많은 사연 중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역아(머리 대신 엉덩이로 먼저 나오는 아기) 출산기를 소개하였다. ‘만에 하나’라는 ‘두려움’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순간’을 놓칠 뻔 했던 ‘사랑이’의 엄마와 아빠. 제왕절개 분만으로 편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었지만, 아기를 위해서 옳은 결정을 하였다고 믿는 엄마와, 이러한 엄마를 사랑과 믿음으로 지지해 준 아빠. 결국 두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한 출산을 한 ‘사랑이의 역아 출산기’ 후반부를 이어가 보자.

[전반부 요약: 사랑이의 부모는 세상살이가 바빠 5년간 아이를 갖지 않고 지냈습니다. 주변의 많은 걱정과 관심을 받으며 어렵게 임신에 성공했고, 내친 김에 아기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자 ‘자연스러운 탄생’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런데 계획과는 달리 첫 번째 장애물이 나타났습니다. 9개월이 다 되어도 엉덩이를 아래로 고집하는 사랑이. 의사 선생님은 수술 날짜 잡자고 성화셨지만, 엄마는 수술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역아도 자연출산하는 병원’을 찾아서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마침내 배우 추상미 씨가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그 병원을 찾았는데…. 너무 늦은 시기에 왔다고 교육 받을 시간이 없다고 안 된다는 것을 음료수 한 박스의 힘과 할머니로부터 어머님으로 이어져 온 우리 집안 여성의 가정출산의 이력을 포함한 ‘출산의 힘’을 무기로 눈물을 흘려가며 설득하고 드디어 출산 준비 완료를 외친 사랑이 엄마.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장애물 등장. 그 때까지 잠자코 있던 남편. 아무리 아기를 잘 낳아도 남들 하지 않는 역아 출산에는 위험요인이 있는 거 아니냐, 수술이 더 안전하지 않겠냐고 설득하는 남편과의 밤샘 토론. 결국 결론이 없는 논쟁은 메디플라워가 제공하는 10시간이 넘는 ‘자연스러운 탄생’ 교육을 받고 바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렇게 정신교육, 체력교육, 남편 준비교육 등 만반의 준비가 끝난 사랑이네 가족! 드디어 출산일이 임박했습니다.]

사랑이가 원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때에 낳을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 왔습니다. 울 사랑인 역시나 역아로 꼿꼿이 앉아 있었답니다. 어찌나 자기주관이 뚜렷한 아이인지 꿈쩍도 안하더라구요.^^ 그렇지만 역아 출산이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진료 중에는 “엄마가 건강하고 골반도 좋으니 걱정 말아요.”라고 안심시켜 주는 말도 제게 확신을 더해 주었지만, ‘믿는 대로 된다’라는 마음이 항상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전 역아라는 사실이 그렇게 산모에게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맹목적으로 믿으려 한 게 아니라, 자연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는 설명하기 힘든 내적 확신이 있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사랑이가 역아상태로 태어난다면 귀여운 엉덩이부터 내밀고 나올 상황을 상상하며 즐거워했고, 사랑이도 거꾸로 나올 자신이 있어서 결정한 것이라 믿었습니다. 제 믿음에 확신을 더하게 된 것은 정원장님의 기도였습니다. 임신이 되고 나서 그 동안 미뤄오던 신앙생활을 남편과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들면서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정일이 지나도 불안하지 않더군요. ‘예정일은 예정일일 뿐 사랑이의 탄생일은 사랑이가 직접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아. 엄마 아빠는 늘 네 편이고, 네 생각과 행동을 존중해.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게.”

실성한 사람처럼 뱃속의 사랑이에게 계속 중얼거리며 운동도 할 겸 교대에서 선릉 근처 집까지 즐겁게 걸어왔답니다. 남편은 겨울이라 너무 멀다며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두꺼운 옷으로 무장하고 따뜻한 차까지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 온 터라 즐거운 마음으로 힘들지 않게 병원에 올 수 있었죠. 사실 마지막 검진 전까지만 해도 ‘사랑이는 막판에 머리를 돌려서 세상에 나올 거야!’라는 기대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정원장님과 함께 하는 기도 덕분에 ‘이젠 역아라도 낳을 수 있어. 사랑이는 문제없이 잘 나올 거야. 난 사랑이를 믿어.’라는 확신이 생겼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중 그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이의 자연출산을 도우시겠다고 광주에서 올라오신 어머니가 아직 더 있어야겠다며 집에 다녀오시겠다고 해서 서운해 하며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뭔가 배에서 싸르르~. 혹시? 생리통을 시작할 때 느꼈던 미약한 진통이지만, 직감적으로 사랑이가 나오리라는 것을 알았답니다. 못 내려가시게 되서 아쉬워 하시면서도 기뻐하시는 마음이 교차하는 친정어머니의 모습을 보노라니 갑자기 웃음이 나오는 거 있죠. 앗! 그런데 상처가 나서 나오는 피처럼 빨간 피가 흥건하게 나왔고, 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약간 당황하셨습니다. 분명 이슬이 비친다고 했는데, 이건 이슬이 아니라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선 침착하게 조산사에게 전화했더니, 이슬이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서 너무 많이 나오면 병원으로 오라고 하더군요. 바로 입원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결국 병원에 가면서 혈흔이 줄었고, 태동검사 결과 사랑이도 건강하고 이슬이 비친 거라고 하더라구요.

드디어 저는 미리 계획했던 일을 실행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남들은 진통하면 토하고 못 먹는다고 하였지만, 저는 잘 먹은 출산수기 엄마들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계획한 대로 고깃집에 가서 평소에 못 먹던 최고급 갈빗살을 4인분이나 먹어 치웠답니다. 어찌나 꿀맛이던지 ‘오~오~’ 감탄하며 먹었지요. 먹는 중간에 진통이 오면 식탁 잡고 잠시 호흡을 고르다가 결국은 4인분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주인아저씨의 신기해하는 표정을 뒤로 한 채 호흡으로 진통을 고르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진통을 하면서도 괜히 남편과 친정어머니에게 장난도 치며 그렇게 조금씩 진통 주기를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아직 폭풍 전야겠지… 웃을 수 있으면 그건 본격진통이 아니라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밤 11시쯤 진통 주기가 짧아지고 그 강도도 세져서 남편에게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계단 몇 개 내딛고 진통하기를 수차례…. 그 땐 처음으로 운동하기에 좋다고 생각한 4층 계단을 모두 없애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죠. 제 별명이 ‘헐크 선생님’인데 그때는 영 맥을 못추겠더라구요. 이 때쯤 되면 진통 주기가 거의 1분 간격(제 생각 속 시계의 시간)으로 왔고, 차가 덜컹거리는 진동에 남편에게 “멈춰! 기어가요. 제발!”하며 짜증을 내기까지…. 그런데 남편의 대답에 또 순간 웃음이 터졌습니다.

“지금 40킬로로 가는 중이야, 여보.”

40? 기어가는구만…. 경운기 타고 가는 기분이라니…. 다행히 병원이 가까워 10분 후인 11시 3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혹시나 ‘자궁문이 아직도 멀었어요~’ 라고 하실까 봐 걱정했는데 많이 열렸다는군요~. 오~예!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도착하고 나니 이제 가진통(假陣痛)을 즐기는 시간은 지나가고 드디어 정신이 혼미해지는 진진통(眞陣痛)이 오더군요. 생리통의 100배랄까? 임신 중에 호흡법이라고 배운 것도 연습할 땐 부끄러워 안 되더니만, 진진통이 올 땐 언제 그랬냐는 듯 미친 듯이 ‘우~ 우~’ 잘도 나오더라구요. 아무래도 저는실전에 더 강한 체질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젠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호흡으로 허리의 고통을 덜기엔 미약함을 느꼈습니다. 이 때 엉덩이를 위로 하고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가장 효과를 본 방법이 바로 남편과 함께 참여했던 ‘토요 부부요가’. 그 때 배운 진통 줄이기 방법 중에 남편이 제 뒤로 가서 골반 양 옆을 힘껏 눌러 조여 주는 방법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보~ 조여줘 봐!”라는 정중한 표현에서 “빨리~! 더~! 더~!”라며 소리치기까지, 이런 야수 같은 부인을 위해 열심히 힘써주는 남편이 없었다면 저는 정말 해낼 수 없었겠다는 생각을 그 짧은 순간에 했습니다. 정말 남편 팔 힘이 좋아야 되는 요법이지만, 저에겐 정말 최고였어요. ‘만약 남편이 없었다면 둘라가 정말 필요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격렬한 구토가 시작되었어요. 솔직히 그 때는 더럽다는 생각도 안 들고 역겨운 냄새도 안 나더라구요. 지금은 정신이 없으니 시원하게 토하고 진통에 집중하려는데 간호사님이 정말 신속히 주변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내심 미안하면서도 간호사 언니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다 친절하고 사려 깊어서 정말 마음이 편했답니다. 이 와중에 사색이 되신 친정어머니는 못 보시겠다며 밖에 나가 계셨죠. 내심 그냥 계시길 바랐지만, 워낙 마음이 여리셔서 이해를 했습니다. 남편이 있으니 크게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속은 진정이 되었지만 진통은 이제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힘을 주라는 정원장님의 느긋한 음성이 제 귀에 편하게 들리더라구요. 게다가 남편이 가끔 “잘 하구 있어! 잘했어!”라며 말을 할 때마다 빠졌던 힘이 다시 충전되는 기분이었답니다. 몇 시간 동안 저는 천장에 달린 줄이 아닌 남편의 손에 매달렸습니다. 온 체중을 남편의 팔에 의지하며 말이죠. 왜 출산장면마다 줄이 필요했는지 체감할 수 있었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올 때 직감했습니다. 아~ 이제 나오려나 보다. 실제로 화장실에서 변을 보다가 애를 낳은 산모가 있었다는 실화가 번득 생각나면서 정말 ‘에라 모르겠다! 변이 나오든 말든 힘을 줘보자!’ 역시 출산의 순간에는 추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더라구요. 정말 변을 보듯 힘을 주며 1차 시도…. 그리고 쉬었다가 시도하기를 두 세 차례. 아~ 드디어 뭔가가 물컹 나왔습니다. 양수가 터지고 엉덩이가 나왔습니다. 그리곤 다시 힘을 줄 때마다 다리가 하나씩…. 한 번 더 힘주니
어깨가 빠져 나왔답니다. 한 번 더 힘주라는 외침에 바로 마지막 머리가….

으흑~ 뜨겁고 물컹한 뭔가가 제 가슴에 올려졌습니다.

드디어 사랑이가 태어났어요. 그것도 아주 건강하게 말이에요~! 포실포실한 엉덩이를 내밀고 당당히 이 세상에~! 새벽3시 15분. 드디어 사랑이가 저희 부부 곁에 왔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함께 지켜낸 사랑이 아빠도 이 감격적인 순간을 지켜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 꼬물꼬물 젖을 물기 위해 스스로 젖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어찌나 신기했던지. 남들은 머리, 어깨 두 번 힘주면 된다는데 저는 엉덩이, 어깨, 머리 세 번을 힘줬던 것 같네요. 순식간에 가슴 위로 올라와 젖꼭지를 빠는 사랑이. 생명의 탄생과 그 생존의 본능이 이런 걸까요? 정말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남편은 감동의 눈물을 보이며 태맥이 사라진 후 탯줄을 떨리는 손으로 자르더니, 아이와의 피부접촉을 위해 윗옷을 다 벗고 사랑이를 한참 동안이나 안아주었답니다. 남편의 그런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았던지 제 사진첩에는 헤벌쭉 웃는 남편의 사진밖에 없네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또 진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태반이 나올 차례였죠. 전 진짜 쌍둥이 출산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거의 같은 진통과 호흡으로 태반을 출산(?)하고서야 언제 아이가 있었냐는 듯 뱃속의 편안함을 느꼈답니다. 조금 뒤 간단한 신생아 검사를 하고 우리에게 안긴 사랑이. 남편은 미리 써두었던 ‘아빠의 편지’를 차분히 낭독해 주었습니다. 정말 우리 가족이 하나됨을 느끼는 순간이었죠. 이렇게 사랑이의 나름 위대한 탄생스토리가 막을 내렸습니다. 사랑이의 역아 완벽 출산. 저희 부부의 믿음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게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자로서 은근히 신경 쓰였던 회음부도 많이 안 찢어져 수술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깔끔한 마무리라고 느껴지네요. 이야~ 엄마가 되었다는 뿌듯함. 우리 부부가 무사히 부모가 되었다는 기쁨. 참으로 멋집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면 역아를 아래로 낳는다는 것 자체가 더 좋다거나 덜 아파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쳐 왔던 병원에서 모두 역아라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것을 거부할 때는, 내가 과연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 건지 두려움이 있었고 날 때까지는 걱정이 내심 있었지만, 제가 믿은 대로 결과를 받는 그 자체가 너무 기뻤습니다. 이 만족감 때문에 자연주의 출산이 더 기쁨이 크다는 것 같습니다. 자연출산 센터라고 했더니 조산원에서 의사 없이 아기를 낳는 줄 아셨다가, 의사가 만일을 위해서 뒤에서 지켜준다는 것을 아신 시댁어른들의 지지와, 혹시나 하며 마음을 졸이셨던 친정어머님의 애타는 도움도 기쁨을 더 하는 요인인 것 같아요. 만일의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도움을 줄 것을 약속해 준 정원장님이 손을 잡아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런 지지와 배려 덕분에 남편과 저는 제 자녀에게 아주 좋은 선물을 한 것 같아 뿌듯했고, 남편과 저는 평화롭게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막상 출산을 하고 나니 그 전에 계획하며 고민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더라구요. 망설이다 예약했던 조리원을 취소하고 아이와 함께 집에서 편하게 조리를 하려고, 도우미를 집으로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약물 사용을 안 해서 그런지, 호흡과 이완 덕에 힘을 덜 써서 그런지, 몸도 가벼워 모유 수유도 스스로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몸과 마음이 너무 편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사랑이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함께 하는 시간이 온종일이다 보니 사랑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가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고 배울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애착형성의 기본임을 알게 되었지요.

이제는 자탄키즈(자연스러운 탄생 키즈)인 윤성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육아 뿐만 아니라 그 다음 과정도 편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자연에 노출이 많이 되도록 18개월부터 자연육아를 하시는 엄마들과 함께 일주일에 두 번씩 산에도 다니면서 자연을 만끽하고 있죠. 두 돌이 지날 때까지 특별히 아픈 곳도 없이 잘 자라나고 감기도 아주 가볍게 지나칩니다. 신체발달은 평범하지만 아이가 언어능력을 타고 났는지 말하기 능력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뛰어나 EBS에서도 출연요청이 올 정도랍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두려움으로 뭔가를 미리 결정하지 않고, 윤성이와 제 몸이 가는 대로 믿음으로 출산을 해 낸, 잘 끼워진 첫 단추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주의 출산으로 얻은 아이의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결과죠. 저는 역아로 시작했기 때문에 여러 극복해야 할 도전들이 있었지만, 다른 엄마들도 저마다 자신들이 극복해야 할 ‘두려움’을 여러 형태로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역아출산의 비결이 사랑과 믿음이었다고 생각해요. 축복기도를 같이 하고 두려움을 함께 믿음으로 극복하는데 함께해 주신, ‘산모들의 미래’를 함께 해주시는 의료진들께 감사드립니다. 셋째 낳을 때까지 주~욱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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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