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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III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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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새로보기

2장.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3. 주기도문의 개요

 

3)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다른 가르침

주기도문을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다른 곳에서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신 기도의 방향과 내용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것을 알아야 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또한
책임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진정으로 믿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단지 의식주를 위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그러한 기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이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자기중심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여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6:30-32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7:9-11

 

또한 성전에서 기도는 하지만 잘못되고 타락한 전통으로 인하여 더 좋은 새와 짐승을 사서 산 제물로 드리면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성도들과, 그것을 이용해서 부를 챙기고자 하는 성직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이러한 왜곡된 복음인 번영신학적 관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21:13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드려진 것을 축복하셔서 더 놀랍게 주의 뜻을 이루십니다.
이 비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우리는 샤머니즘적 신앙관으로 자신의 것을 더 갖다 바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파친코 기계에서 엄청난 돈이 쏟아져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구슬을 넣는 것처럼, 그러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 드리게 됩니다.

3장.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본 주기도문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주기도문의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주기도문의 내용은 너무나 깊고 놀랍기 때문에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한 단어 혹은 한 구절씩 새롭게 정의하거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 하늘에 계신

하늘은 단순히 물리적 하늘(sky)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가 계시는 곳(heaven)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은 땅에 있는 우리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초월적인 세계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물리세계(현실의 영역)에 존재하는 인간이 초자연적 세계(영원의 영역, 영광의 영역)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창조주의 절대성과 영원성과 피조물의 한계성과 유한성이 비교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전5:2

 

한편으로 하늘에 계신다는 사실은 이 땅에 사는 인간의 인식을 넘어서 존재하시는 분으로, 신비와 경외감을 가지고 그분을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아버지여

하나님을 가리키는 보편적인 이름은 엘로힘(Elohim)입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칭할 때 쓰인 단어가 바로 엘로힘입니다.
야곱은 엘로힘과 씨름하면서 그 이름을 물었을 때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창32:22-30).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창32:29

 

그러나 그 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이 야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출3:15

God also said to Moses, Say this to the people of Israel: Yahweh, the God of your ancestors

–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

has sent me to you. This is my eternal name, my name to remember for all generations.

 

그 당시 유대인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대단했기 때문에 감히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이런 글자를 마주칠 때마다 “나의 주님(my Lord)” 이라는 뜻을 지닌 “아도나이(Adonai)”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뒤에는 여호와(Jehovah)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바 파테르(Abba Pater, Dear Daddy)로 부른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이런 칭호는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신성 모독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자신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신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이 땅에 있는
인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으로, 초월적인 신과 유한한 인간의 관계를 생명을 나눈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바꾼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초월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내 안에 내재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려 주시고 계시며,
그 관계가 가족관계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8:15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4:6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며,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중생한다는 것이며, 그 연합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난 자들이니라 요1:12-13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이유도, 아무런 대가없이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이유도,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자녀 삼으시고 새롭게 하시는지를 잘 알게 됩니다.
 

3) 우리

예수님은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그렇게 기도하지만,
실상 대부분 우리 마음은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분은 우리 아버지이기 전에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에서 우리 아버지로 표현한 것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나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을 너무나도 개인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마치 나의 아버지만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나를 예수님만큼 사랑하시고 나의 문제를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다른 사람도 예수님만큼 그리고 나만큼 사랑하시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요일5:1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부모님이고, 그분은 이 세상에 사랑할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시지만,
다른 자식들에게 미치는 사랑에도 차이가 없습니다. 열손가락 중 어느 손가락을 깨물어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인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의 입장에서 아버지와의 관계만을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나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의 가족, 즉 우리를 생각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내 자신, 내 가족, 내 처지와 상황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나라와 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본래 우리를 지으신 대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홀로”와 “함께”가 항상 동시에 공존해야 합니다.
만약 홀로만 주장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함께만 주장하게 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는 우리는 집단이기주의만 낳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내 안에 거하시지만, 그분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1

 

따라서 우리가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결코 혼자일수는 없으며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나”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소속되지 않는 나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개인주의적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고, 주님의 관점에서 나와 우리를 보게 해 줍니다.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할 때 비로소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인
그 사랑이 자신의 기도의 기초와 바탕이 되며, 하나님의 자녀들과 관계없는 자신만의 기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4)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대부분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는 “우리 아버지”보다는 “하늘에 계신”에 강조점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인간을
자녀삼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는 하지만 너무나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그것이 실제일 수는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오히려 나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이 하늘에 계신 분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은 땅에 있고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차원이 다르게 존재하며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만 인식되었던 것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새로운 관계를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하늘에 계시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수직적인 관점에서는 나와 아버지의 관계회복을,
수평적인 관점에서는 내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회복을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관계 안에서 성립되며,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혼자서 하는 관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9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2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사랑으로 관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도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 로소이다 요17:2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일3:1

 

그분은 하늘에 계시지만 그 하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초월한 곳이며, 우리는 언제나 그분을 뵈올 수 있습니다.
그분과의 친밀함은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만큼 깊어지며, 성령님에 의해서 그 친밀함은 확증되어집니다. 기도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호칭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른 자녀와 동일한 아버지를 둔다는 것이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이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나라와 피부색이 다르다 할지라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으로써 형제, 자매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인 관계회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 보겠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 하나님께서는 노아 홍수를 통해서 지면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후 노아 후손들은 다시 하나님께 반역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기 보다는 인간 스스로가 주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창세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인간이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반역을 막기 위해서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그들을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를 이루었고, 다른 민족을 이루게 되었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자들은 자신들의 영토와 민족을 위하여 서로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11:7-9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다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임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 나라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첫머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시작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주기도문의 첫 번째 기도문은 흩어진 나라와 민족, 혼잡한 언어를 지닌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게 하고 동일한 아버지를 두게 되는, 하나님나라(하나님의 통치)의 도래라는 만세의 비밀이 풀리는 가장 놀라운 선포이기도 합니다.
모든 인류가 본래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 그리고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깨닫게 해 주는 핵폭탄과 같은
선포이기도 합니다.

범위를 축소시켜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펴봅시다. 타락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혈연, 지연, 학연에 기초하여
“우리”라는 이름으로 뭉쳐져 있으며, “우리”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어떤 우리”에 소속되어 있는가에 따라
삶의 질과 신분이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나은 “우리”에 소속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는
인간이 만든 집단이기주의적 개념이며, 자신들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분열과 다툼, 비난과 정죄로 “우리”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사회에서 가장 질기며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의 “우리”를 넘어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
새로운 공동체로 하나님나라에서 “우리”의 정의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12:49-50

 

모든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한 아버지의 자녀들, 즉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회복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과 언어뿐만 아니라 혈연. 지연, 학연을 초월하여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케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롬8:16

 

사실 한글 주기도문에는 “우리”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오지만, 실제 헬라어 성경에는 “우리”라는 말이 아홉 번이나 나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만약 주기도문에서 “우리”라는 말의 의미를 희석시킨다면 그것은 분명히 마귀의 짓일 것입니다.
마귀가 불법으로 붙들고 있는 가장큰 능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것과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우리”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우리에게 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우리를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타락한 이 세상을 회복시키는 우주적 관점인데, 우리는 나의 아버지, 우리 가족의 아버지, 우리 교회의 아버지,
우리나라의 아버지로 여전히 왜곡된 아버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주기도문을 보지 않고 타락한 인간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첫머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관계”로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며, 기도할 때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종류의 우리 관계
(나라, 민족,피부색깔, 혈연, 지연, 학연 등)를 “하나님의 가족관계”로 새롭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묵상]

2015_06_03

  1. 여러분의 마음에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느낌이나 감정은 무엇입니까?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2.  

  3.  여러분의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나 관계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나 관계에 어떤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나누어 보십시오.
  4.  

  5.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다시 한 번 천천히 되뇌어 보십시오. 혈연관계를 떠나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로 느끼지시는지요?
  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요1:12-13
     

  7.  “내”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차이에 대해서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