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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의 복음
2014년 10월 30일 광장교회 가을성령집회 메시지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4:23
마태복음 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선지자와 율법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마침내 때가 이르러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나라는 우리가 죽고 난 뒤에 가는 천당이 아니라 바로 현재적인 하나님나라이며,
그 나라가 도래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질병을 치유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광풍을 잠재우시는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시면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병든 자를 치유하라.
그리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것이고,
그것을 받지 않을 때는 신발에 먼지를 털고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온 세계를 다니면서 동일하게 그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선포할 때 “하나님의 나라, Kingdom, King’s dominion,
하나님의 통치, 주권, 치세, 왕권, 하나님나라가 임했습니다!”라고 선포할 때,
어린아이처럼 그 하나님나라로 침노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서
성령의 권능으로 기적을 경험하는 것을 수도 없이 목도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너무나 편협하게 좁은 복음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했다는 임했다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구원 복음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 때가 되면 천당 간다는 것이 마치 복음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나라인데 언제부터인지 하나님나라와 복음이 이혼해 버렸습니다.
복음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이고 하나님나라는 죽고
난 다음에 가는 곳이라고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으므로 흑암의 권세가 떠나갈 것이며,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것이며, 마귀의 자식이었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하신 바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인데,
오늘날은 이 세상에 살면서 내가 하나님을 믿는 그런 종교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복음이 아닙니다.
마귀가 통치하던 이 세상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다시 통치하시게 되었다는 좋은 소식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이제로부터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선포되리니 모든 사람들이 그리로 침노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는 없지만, 하나님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삶을 친히 사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아직 오지 않은 그 하나님나라, 우리에게 임할 그 하나님나라를 바라보시며 ‘나라가 임하옵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마태복음 12장 28절에 ‘내가 성령에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이면 이미 하나님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8
하나님나라는 이미 이 땅에 도래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나라로 침노해 들어가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써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다 이루신 그 약속의 말씀이 오늘 내 삶에 내 현실에 나타나도록
하는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을 믿는 신자로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다시금 연합한 자,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행위와 공로와 헌신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뭔가를 더 받아먹고 형통, 축복,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얻고 중생을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적으로 이제는 혈통이나 육신이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미 의인으로서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는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자녀에 걸 맞는 태도를 취하고,
하나님의 자녀에 걸 맞는 행동을 하고, 이 땅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의롭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우리의 마음이 일치된 것,
즉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a right relationship with God)가 되었다는 것이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새롭게 만드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이 그의 뜻을 이 땅에 우리를 통해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입니다.
이 세상의 법칙 가운데서 이 세상의 법칙을 잘 이용해서
내 문제에 하나님을 끌어 들여서 내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그런 도둑 같은 신앙인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임하심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을 재조명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삶을 사는 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되지 않고는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복음은 이 세상이 변화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발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복음은 새로운 세상이 왔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이 끝이 나고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나라가 왔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새로운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태생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가 되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을 때에,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임함으로 인해서 보이는 것이 달라지고,
들리는 것이 달라지고, 마음에 생각되는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땅이 마귀의 흑암의 권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보는 삶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해 주시지 않으면 그렇게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영 안에는 있지만,
우리의 일상 삶은 우리의 혼,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 우리 육신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혼과 육을 통치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에 배웠던 경험과 지식과 자신의 정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썩어져가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령으로 새롭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의 생각과 태도를 날마다 새롭게 하실 때라야만 우리는 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고 성령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혼과 육을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기름 부으시고 나타나시는 그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것입니다.
‘기적 종식론’, ‘은사 중지론’과 같은 이상한 신학적인 이론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신앙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고 체험하고 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을 보시고 이 세상을 당신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나라로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사로잡고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대리인으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동물의 이름을 지었을 때 그 이름이 그대로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혼·육을 사로잡고 있을 때에 우리 마음속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보이는 모든 피조세계는 말씀의 반영일 뿐인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땅에서 실체로 나타난 것뿐입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아서 우리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 준 모든 권세와 능력은 마귀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로부터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죄악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로마서 3장 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가운데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을 때 우리에게는 영적 죽음이 임한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갔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나타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세상 신인 마귀가 우리에게 들어오고 이 세상은 그들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2:2
에베소서 2장에 보면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자의 심령에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영이 바로 마귀이고 세상 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가득한 것이 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락하고부터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을 그 입술로 말하는 자가
아니라 마귀의 본질, 마귀의 성품을 나타내는 존재로 타락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천지만물을 지으실 때 인간에게 믿음의 법칙을 주셨습니다.
“믿은 대로 될지어다”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을 그려보고 상상하고
선포하고 믿는 대로 행동함으로 이 땅을 통치하는 자이자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살았는데,
마귀가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써 우리 마음속에 더럽고 악하고 추한 것들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가득한 것을 보고 듣고 말하고 믿고 믿는 대로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고 타락시킨 것이 바로 오늘의 이 현실입니다.
이 현실은 궁극적으로 마귀가 이렇게 만들었지만,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사람의 마음이 악한 것은 우리의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와 의를 구하며
믿음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믿은 대로 이 현실이 타락해 간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그들은 우리의 생명을 죽이고 도둑질하고 멸망시켜 왔습니다.
우리는 갖가지의 환난과 고통과 절망과 고난과 가난 사이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선지자, 대선지자, 소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처럼 메시야가 오실 것이고, 메시야가 그의 나라를 회복시킬 것을 말했습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단7:22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의 하나가 나라입니다.
처음부터 계신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 여호와 하나님의 성도들을 위하여 신원하셨고,
원한을 풀어주셨고, 때가 차매 마침내 그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고 예언했습니다.
떠나갔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생명이 다시금 들어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선지자들의 예언처럼 2천 년 전에 마침내 때가 차매 세례 요한을 광야에서 앞서 선포하는 자로 보내셨고,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때가 이르매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바로 이제는 그 예언에 따라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마귀가 통치했고 우리가 마귀의 종으로 살았고, 왜곡되고 타락하여 종말이 오게 만든 이곳을,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나라, 그의 통치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의 주인은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우리는 마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고, 그와의 거룩한 교제를 회복할 것이고,
이제 그분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그의 뜻을 이 땅에 나타내며 다스리는 권세를 회복하고 땅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고, 그때야 끝이 올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나라가 2천 년 전에 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가 사라져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 스스로도 변혁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십자가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와 성령을 나누어서 생각합니다. 어떻게 십자가와 성령을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십자가를 제대로 깨달았다면 십자가는 우리를 반드시 성령님으로 인도합니다.
성령을 제대로 받으면 반드시 성령님은 우리를 십자가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의 관점에서 십자가의 도를 바라보지 못하고,
단지 내 개인의 구원의 입장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어떻게 복음일 수 있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들이 이 교회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싶지 않아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아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것은 관념적인 신앙일 뿐입니다. 그분과 살아있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단지 관념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다면 어떻게 십자가 도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이제는 내 뜻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내 일상의 삶, 내 생각, 감정, 의지, 내 육신을 지금 이곳에서 통치하시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하나님나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시키기보다는 세상이 교회를 세속화시키는데도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영적 전쟁은 능력의 대결입니다. 진리가 있다면 그 진리에 따른 권능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