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자녀의 출산의 능력과 사랑
Birthing & Building
하나님 자녀의 출산의 능력과 사랑
산부인과 전문의 메디플라워 산부인과·자연출산센터 원장 정환욱
오늘날 지구에는 70억 명 가까운 사람이 살고 있다. 2007년도에는 1억3천4백만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시고 복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그 지상명령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다. 계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인구가 늘면 지구는 2100년이면포화 상태가 될 것이라고 걱정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누리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는 오늘날 어떻게 그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우리는 복 주신 생명인 우리 자녀를 믿음으로 찬양하며 은혜 가득한 출산의 기쁨을 누릴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인을 통하여 그 능력과 기쁨을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새 생명의 탄생은 한여인뿐 아니라 남편 그리고 가족과 형제자매들에게 축복이며 은혜이며 사랑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킹덤빌더는 고통과 두려움보다는 환희의 기쁨과 감사 안에서 생육하고 번성할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병원에서 태어나지는 않는다. 병원 아닌 곳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더 많다.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탄생에 관여 하신다. 어떤 곳에서 출산하는 부모와 아이가 더 기쁨과 감사를만끽할까? Gentle birth, Gentle mothering의 저자 사라 버클리 박사는 그녀의 네 번째 가정출산을‘힘들었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도전받은 그러나 기쁨 넘치는 출산’으로 표현하였다. 아울러 ‘궁극적으로 환희와 온전해지는 축복’으로 세상의 모든 여인과 가족이 그 축복을 받기를 소원했다.오늘날 우리나라 여성은 출산을 위하여 99.8%가 산부인과를 찾아서 분만대 위에서 의료진의 손에 의해서 수술하듯 아기를 낳고, 아기는 첫 호흡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엄마와 분리되어 의료진의 손에 의하여 생애 첫 날을 보낸다. 그리고 10명 중에서 3명 이상은 수술실에서 태어난다(우리나라 제왕절개율 25-80%, 평균 38%, 건강보험 심평원자료).
사라 버클리가 나누길 원했던 탄생 첫 순간의 온전한 기쁨을 누릴 기회가 우리의 걱정과 우려가만든 세상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는 킹덤빌더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기쁨과 은혜가 넘쳐야 할 순간이 고통과 안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믿음 부족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출산과 모유수유, 육아의 첫 출발을 한다. 우리는 예수님 닮은 자연스러운 탄생, 축복의 탄생을 누릴수 있다. 우리는 출산의 고통을 아담과 이브의 죄에 대한 벌로 믿으며 고통스러운 구약시대의 죄인의 출산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킹덤빌더는 그 죄로부터 자유하다. 따라서 원죄를 받은 아담과 이브의 고통스러운 출산을 할 이유가없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과 사랑의 기쁨으로 평화롭게 예수님 닮은 출산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킹덤빌더의 임신과 출산은 차가운 산부인과 분만대와 신생아실로의 격리가 아니라,고통 없이 낳고 건강하게 태어나 엄마와 아빠 품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출산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우리가 선택하고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주신다. 16년간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발버둥 치며 산부인과전사로 고통의 분만 현장에서 괴로워하던 필자에게 어느 날 성령의 은혜가 임하였다. 2007년 11월 27일 이태원의 조그마한 욕조의 물 안에서 뉴질랜드 엄마와 아빠가 건져낸 모지(모세를 따서지은 이름)의 출산에 초대되었다. 그 때는 못 느꼈지만, 그 탄생은‘두려움’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은혜’였다. 그리고 오늘날너무나 감사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쁨과 찬양이 넘치는 가족의 탄생을 함께 하는 복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1:7
뉴질랜드 여인 나타릴와 닥터 정의 가정출산
오늘도 나탈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닥터 정, 전 산부인과 병원에서 제 아이를 낳고 싶지않아요. 집에서 날 때 와주세요.”
“오! 나탈리, 아기를 집에서 어떻게 낳아요. 혹시 병원이 맘에 안 드세요?”
“아뇨. 소개해준 여의사는 너무 좋고, 병원도 너무 좋아요. 저희 고향에서는 집에서 낳는 사람도 많아요. 의사선생님도 지지해주고 도와주세요. 저희 엄마도 절 집에서 낳았구요.”
영어를 좀 구사한다고 소통이 다 되는 건 아니라더니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나보다. 이걸 도대체어떻게 설명하고 거절해야 하나. 벌써 몇 차례 이런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기를 집에서 낳는다니 왜 그런 위험한 생각을 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나탈리!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있으면 그 땐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안되겠어요. 나탈리.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다시 와서 얘기해요.”
더 이상 얘기를 진행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저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 동안 분만실에서 봐왔던 고통스러운 진통을 피하기 위해서 꼭무통분만 해달라던 산모들과는 다르다. 무지하다기 보다는 자신의 결정이 가장 최선의 결정이고,스스로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도대체 뭐가 다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탈리와는 수술로 인연을 맺었다. 당연히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믿는 나에게 자신과 가족이 이 상황을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질문과 상의를 원했던 까다로운(?) 외국인 환자였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큰 병원의 좋은 의사를 마다하고 설명을잘 해주고 자신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최대한돕는 의사를 찾던 나탈리에게 설명을 많이 하는나의 진료 방식이 잘 맞았던 모양이다. 다행히 수술경과가 좋아 크게 만족스러워 하며그때이후로 외국인 환자를 많이 소개해주었다. 나탈리는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살면서 지금 남편과 결혼을 했고, 아시아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해서 돌아다니다가 한국까지 오게 되었고, 보이스 레코더(Voice recorder; 영어 교재 녹음을 해주는 원어민)로일하며 이태원에 살고 있었다.
당시 나에게는 아기 받는 의사 역할이 너무 힘들었다. 소위 강남에서 잘 나가던 산과 의사 역할에서 보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 40~50명의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한 달에 30~40건의 분만및 수술을 해야 했다. 며칠에 한 번씩은 한밤중에도 호출을 받아 병원에 가야 하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아기 받는 일은 안 하리라 결심하고 새롭게 부인과만 하는 개인 병원을 개업한 상황이었다. 병원을옮기며 산부인과로 유명한 C 병원의 영어 잘하는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었는데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나탈리는 남편과 함께 그 다음 주에 다시찾아왔다. 이번에는 나를 설득할 자료를 잔뜩 들고 왔다.
“닥터 정! 가정출산을 부탁해서 어려운 것은 알아요. 그런데 선생님 밖에는 도움을 청할 분이 없어요. 제 고향뉴질랜드에서는 아기 낳으러 병원에 안 가는 사람들이많아요. 물론 조산사와 의사가 돌봐 줘요. 저희 할머니,어머니는 아기를 잘 낳으셨던 분들이라 굳이 병원에 안가셨어요. 저도 잘 낳을 수 있어요. 내 집에서 편안하게진통하며 내가 아는 사람들과 같이 자유롭게 아기를 낳고 싶어요. 그게 저와 아기에게 가장 좋지 않겠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추천해 준 의사 선생님들은 제 뜻을 이해하지 못하세요.”
“아 그렇군요. 그래서 집에서 낳겠다는 것이군요.”
“네. 저와 남편은 의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을 알아요. 그렇지만 제가 공부해본 결과 진통이나 출산 중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사람들은 병원에 가야 안전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병원이 더 위험하대요. 이 자료 좀 보세요.”
나탈리가 보여주는 여러 글과 사진, 동영상은 놀라운 것들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집에서 남편과 아기 낳는 장면들이었다. 심지어는 병원에서도 물마시고 먹어가면서 가족과함께 진통하는 모습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것은 그들의 표정은 고통스러워 도움을 청하는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뭔가에 빠져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까지 내가 봐오던 분만실은 마치 우리가 가기 싫어하는 응급실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혼란스러웠다. 아기 낳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 다 알고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아기는 우리들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니면 못 낳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름산부인과 명의라며 자부하던 내가 의사가 빠진출산이 존재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게 안전하단 말인가? 나탈리는 자연주의 출산(Natural Birth, Gentle Birth)이라는 출산법이 있고, 유럽과 오세아니아의 나라들은 이렇게 의사들과 조산사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들의 방법으로 스스로아기를 낳도록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방법은 오래전부터 해오던 자신들의 아기 낳는 방식에 의학이 도움을 주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런 자연스럽고 더 건강한 방법을 잃어버린 나라가 미국과 우리나라라는것이다. 나탈리는 그냥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방법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그걸 이해하고 돕는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닥터 정! 도와주실래요? 제 아이가 그걸 원해요. 그리고 전 제 출산이 저와 남편을 더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믿어요. 별일 없을 겁니다.”
혼란스러웠다. 거절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만일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다음이 해결이 되지 않았다.
“참 곤란하군요. 뭘 원하는지는 알겠는데 제가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탈리는 알아 챈 것 같았다.
“좋아요, 원장님. 그러면 의사가 아니라 친구로서 제게 와주시겠어요?”
“친구로요? 의사가 아니라? 음…. 그럼 한번 생각해 볼게요.”
“와우! 정말 고마워요. 닥터 정!”
나탈리가 와락 나를 껴안았다. 내 안에도 기쁨이흘렀다. 친구! 그 한마디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막힌 것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두려움이라는 단단한 알껍데기가 쪼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목마르고 지친 여행자에게 나타난 반가운 이정표였다. 내 안에 두려움 보다는 기쁨과 행복한 믿음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나탈리는 돌아갔다. 막상허락은 했지만 그래도 의사인데 내 할 일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만있자…. 어떤 장비들이 필요할까. 정말 막막했다. 생각나는 대로 응급 장비를 우선 챙겼다. 석션 스포이드, 켈리 클램프스(탯줄 양쪽을 묶는 도구), 가위, 그리고 회음부의 손상을 봉합할 간단한 기구를 챙겨 놓았다.
마침내 진통이 시작된 나탈리로부터 연락이 왔다. 간호사에게 앞으로 하루 이틀은 응급상황 때문에 외래 못 본다고 하고 대진해줄 선생님 연락처를 주고 준비한 가방을 챙기고 병원을 나섰다. 11월인데 아직 날씨는 가을 날처럼 밝고 따뜻했다. 바람도 신선했다. 내 마음에서도 걱정과 두려움도 안개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설렘과 기쁨, 얼마 만에 맛보는 느낌인가. 외국인들이 지나다니는 이태원 길을 걷자니 마치 외국으로 왕진가는 느낌이다. 오래전 병원이 없던 시절의 의사들은 이렇게 가가호호 아픈 사람을 찾아다니며진료를 했을 것이다. 그 때의 의사들도 온 힘을다해 문제를 찾아내서 해결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의 내 마음처럼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누구를 도울 수 있다는 벅찬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늘 하는 일상의 일에 지쳐있었을까. 병원 안에서 자신을 억누르던 책임감, 방어적인 진료자세, 업무 부담감도 있었을까.
집에 도착해보니 나탈리는 진통이 막 끝났는지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전에 자기가 준출산 계획서(Birthing preference)대로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나탈리의 진통에서는그동안 병원에서 보아왔던 다른 산모들과 달리고통스러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5~6분마다 오는 진통을 넘기기 위해 침착하게 호흡고르는 소리만 몇 번 낼 뿐이었다. 나는 우선 내진을 해서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어떤 상황인지알고 싶었다. 진찰 소견이 없이는 그 다음에 뭘해야 할 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의사로써 뭔가해야 한다는 부담이 느껴졌다. 그런데 나탈리가준 출산 계획서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꼭 필요한 경우만 내진을 해주세요.’
답답했지만 최대한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내진도 못하게 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불안해졌다. 만일 아기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뭘로 아기가 잘 있다는것을 알 수 있을까. 나탈리의 호흡과 진통의 리듬에 맞춰 지난 16년이라는 세월 동안 마주쳤던 수많은 출산 경험 중에 좋지 않았던 기억들, 응급상황들이 아주 빠르게 파노라마 처럼 내 머리를타고 흘렀다. 그 답답함과 고통의 순간들이 가슴을 꽉 누르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어쩌지…. 얼마나 흘렀을까 머리가 하얘진 순간이 지나고, 어느덧 나탈리의 호흡에 맞춰 같이 숨을 고르게 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놀라웠다. 그 두려움과불안의 마음이 호흡과 함께 안정을 찾고 오히려편안해지는 것이다. 졸음이 몰려 왔다. 나탈리의호흡 소리에 깨다 졸다를 반복하였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잠깐 졸았나 싶었는데 남편이 간식을준비 했다고 부른다. 나탈리는 천천히 움직이며같이 식탁에 앉았다.
“닥터 정! 정말 고마워요. 와주셔서. 너무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나탈리는 나에게 미소를 보내며 내가 와주어서마음이 참 편하고 좋다고 고맙다고 했다. 전혀 걱정하는 마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걱정을 잊고 있었다. 날이 저물면서 나탈리가 침대 방에 있었다. 간헐적이던 신음 소리와호흡 거칠어지는 소리가 점점 빈도가 잦아졌다.남편과 나는 거실에서 그 동안 살아온 이런 저런얘기를 하다가 같이 졸고 있었다. 새벽에 잠깐 깊은 잠을 잤나 싶었는데 나탈리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욕실 안이다.
“닥터 정! It’s coming! 아이가 나와요.”
화들짝 놀라 욕실로 달려갔다. 작은 욕실이지만남편이 들어가 뒤에서 받쳐 주고 있었다. 나탈리는 남편에게 기댄 채 아기 머리를 만져 보며 고통스럽지만 기쁨의 미소를 뗬다. 까만 아기머리가물 안에서 흔들려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회음절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나탈리가 준 자신의 자연 출산 안내문 세 번째 줄이 생각났다.
‘저는 회음 절개를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어떻게 되나 기다려 보자! 나탈리의 진통은여전히 5-6분 간격이었지만 한 번의 진통이 더길고 강해졌다. 나탈리는 참을 수 없는 듯 끙끙거리며 힘을 주었다. 마치 화장실에서 변을 보는 그런 반사작용과 같았다.
“나탈리! 힘주지 말고 그냥 호흡하세요. 배에 힘 빼세요.”
“I can’t!”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침내 까만 머리가점점 더 나오며 나탈리는 짧게 악 소리를 냈다.이마가 보이고 뽀얀 얼굴을 돌린다. 나탈리가 몸을 틀며 힘을 주니, 아기가 이내 미끄러지듯 물안으로 쑤욱 나온다. “나탈리! 나왔어요!”를외치며 물에 손을 넣고 마침내 아기(모지)를 나탈리의가슴으로 끌어 올린다. 꿈틀거리던 모지는 이윽고 우렁찬 첫 호흡을 터뜨린다. “응아!”이건 우는 게 아니다. 힘든 과정을 엄마아빠와 함께 하며정상에 오른 아이들이 지르는 환호성이다. “야호!”우리는 모두 기쁨에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그 순간은 그 어떤 운동 경기나 일을 잘 해내었을때보다 훨씬 더 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그냥 그렇게 서로 느끼는 것까지도 확실하게 알 수있었다. 그 동안은 머리로 이해되지 않고 서로 설명 하지 않으면 소통할 수가 없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말과 설명이 필요 없이 서로 같은 것으로마음이 채워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생명이고, 사랑이며, 하나님인 것이다. 그동안 내가 가졌던 의심과 불안과 두려움이 믿음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은혜와 진리를 경험한 것이다.
“나탈리! 수고했어요. 축하해요.”
“닥터 정! 고마워요.”
언제 그렇게 아팠냐는 듯 전혀 지치지 않은 나탈리의 눈가에는 진심이 담긴 깊은 고마움이 느껴졌다. 이런 감사와 고마움의 소통은 처음이다.우리는 그렇게 같이 감동의 시간을 말없이 조용히 맞았다. 모지는 핑크빛 몸을 들썩이며 조용하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자궁 안에서 있었던 그자세로 엄마의 품에 안겨 다시 잠들었다.
나의 자연주의 출산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그 뒤 자연 출산을 원하며 나를 찾는 많은 외국인 산모와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찾아와 성공적으로 출산하는 우리나라산모들을 보며“체격 좋은 외국인들이니까 이렇게 자연출산할 수 있을거야.”라는 편견 또한 깨어졌다. 그 뒤 7년간 의과대학과 산과 병동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었던 진정한“정상”의 개념도배웠다. 그것은 의학이 알려주지 못하는 하나님의 진리임을 깨달았다. 인간과 의학은 그저 나열하여 구분할 수 있을 뿐, 생명의 탄생과정에서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오직 몇 몇을 지켜낼 수있는 것이다. 그 뒤 내 삶의 방향은 바뀌었다. 인도하심에 따라 예비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일은 엄마와 아이를 위한 수영장에서 예상치 못한 일로 생명의 힘을 약화 시킬 수 있는 5%가 안 되는‘만일의 상황’에대비하는 전문 구조원 같은 자연주의 출산 전문의이다. 또한 그들에게 얼마든지 평안하게 지낼 수있는 임신 전 기간을 두려움과 고통에 대한 대비로만 허비하지 않고, 잉태 전부터 모유수유 기간의 힘든 기간을 보내는 동안 부모로써 예비해야할 가치와 신념에 대하여 교육하고 있다. 진통전 시기에 앞으로 겪을 일들은 의학적인 일뿐 아니라 생명과 사랑의 관계에 관한 삶이라는 것을,용기 있는 믿음의 엄마들과 함께 겪은 이야기를통하여 전하며, 믿음의 엄마로부터 또 다른 자연스러운 탄생을 경험할 수 있는 복을 받으며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