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LIFE &
상담
창조적 관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인간으로 살아갑니다. 인간을 나타내는 영어 표현은‘Human Being’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우리 사회를 볼 때, 우리는 인간을‘Human Doing’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사람됨을 그 사람이 어떤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조직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William V. Pietsch(2007)의‘Human BE-ing’이라는 책을 알게 됐습니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인간을 행위나 역할이 아니라‘존재 그 자체’로 보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서 이책을 좋아하게 됐습니다(누구나 이 책을 좋아하실 겁니다. 왜냐면, 글보다 그림이 많고, 그나마 몇 개있는 글자도 엄청 큽니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일들을 만나게 될 때, 우리 중에 왜 어떤 사람은 사사건건 따지고 또 왜 어떤 사람은 뒤로 물러나는 행동 방식을 취하게 되는지, 우리가 대인관계를 맺을 때 취하게 되는 행동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대인관계의 역동에 대해, 관계의 패턴이 형성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자녀 관계의 감정전이와 힘겨루기를 다루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이 책(Human BE-ing, 인간 만남 그리고 창조, 번역본 참조)의 내용을 여러분과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창조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입니다. 특히, 한 사람은 힘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에 두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힘겨루기와 감정의 전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관계의 많은 문제들은 힘으로 얽힌 상황에서 서로의 감정이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으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림1).
[그림1]
그런데 이 감정이 어떠한 것인가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 사람일거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림 2). 따라서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주된 원인은 우리가 사실 그자체보다는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것만을 보려고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기대했던 바를 보려는 습관’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림2]
이 문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는지요? 이상한 점이 없어 보인다면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세심하게 보시면, 세 번째‘옛날에’가‘엣날에’로 적혀있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틀린 글자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보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기초로 해서 이 문장을 보기 때문에 그 경험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무시해버립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맞지 않는 것은 무시해버립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않는 한 인간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이만나는 사람들로부터‘친숙한 타입’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볼 때 기대하고 있는 ‘그 타입’에 맞지 않는 자질들은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림 3).
[그림3]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감정과 그로 인한 반응을 지금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전이라고 합니다. 전이(Transference, 轉移)는 내담자가 과거에 중요한 타인에게 느꼈던 감정이나 환상을 무의식적으로 치료자에게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전이분석(transference analysis)은 내담자가 상담과정에서 상담자에게 나타내는 전이현상을 분석하는 것으로서 정신분석의 핵심적 요소중 하나입니다. 내담자가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관계 패턴을 상담자에게 나타내도록 유도함으로써 무의식적 갈등을 이해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는 그 속에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도록 정보가 입력되어 있어서 “자동반응”을 합니다. 전이는 이와 같이 컴퓨터처럼 작동하는 인간의 마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행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자동 반응은 의식이 자유롭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편리함과 유용함을 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동반응은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리는 미루어 짐작한 어떤 타입의 사람에게 자동반응을 함으로써 전이를 하게 됩니다. 자신이 그렇게 하고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그림 4).
[그림4]
전이는 대개의 경우 우리가 힘을 가진 사람과관계를 맺게될때 어린시절의 감정들이 자동반응으로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어린시절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끼는 더 힘센 사람, 더 똑똑한 사람, 더 가진 사람에 비해 열등한 입장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차 우리는 힘을 가진‘어른’들을대하는 최선의 방책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림 5).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힘을 가진 사람을만나게 되면 어릴 때부터 익혀 온 방책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림 6).
[그림5]
[그림6]
대개 상대방으로 인해‘왜소감’이나‘무력감‘, ‘압박감’을 느낄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어린 시절의 반응들을 ‘전이’하게 됩니다.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전이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상대방과 나 자신을 더불어 이해하게 해주는 열쇠입니다.그렇다면 전이가 일어나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7).
[그림7]
어릴 적, 요구가 지나치게 많은 부모를 만났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요구에 대처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ㅇㅇ우리는“말 잘 듣는”아이가 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을 듣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못하게 됩니다. 한편 “반항하는”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반항하는 태도를 보이면 부모들은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TV 보기, 군것질 등)을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림 8).
[그림8]
요구가 지나치게 많은 부모를 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책으로 ‘미루기’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 나중에 할게요.”라고 할 때, ‘저… 나중에’ 는 우선 모면할 수 있게 해주고, ‘할게요.’는부모를 거스르지 않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상황과 관계에서 일단‘최선의 방책’ 을 알아내면 우리는 그것을 프로그램화하여 비슷한 인간관계를 만날 때마다 쉽게 그 방책을 자동적으로 앞세우려고 합니다(☞ 그림 9).
[그림9]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이러한“최선의 방책”을 되풀이하려는 경향이있습니다. 때때로 “미루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요구를 만날 때마다 그것을 미루게 되면거기서“전이”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아도 됩니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부모를 가졌다면, 우리는 상대방이 정당하게 요구하는 것마저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다”는 증거로 해석하려 할 수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놀랍게도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는”부모를 가진사람은 흔히 “요구가 지나치게 많은”부모를 가진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갖고 싶은 성격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질서와… 안정과… 권위를 상대방에게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구가지나치게 많은”부모를 가진 사람은 그와 반대로 “자발적”이고“여유 있는”사람을 좋아합니다(☞그림 10).
[그림10]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방이야 어떻게 생각하든‘자신을 고집’하며 힘으로 겨루는 대신에 서로의‘존재’를 인정하며 풍성한 인간관계를 맺도록 창조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을까요?(☞ 그림 11) 사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용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나 자신에게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림11]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4:19
우리에게 관계의 문제가 생길 때, 우리는 나의생각이나 반응 습관에 따라 판단할 것이 아니라,하나님 보다 높아진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삶 동안 육신의 부모로부터, 환경으로부터 들어와서 나의 마음과 세포 안에 각인되어 있는 부정적인 자동화된 패턴을 십자가에 못 박고 과거의 기억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 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하니 고후10:3-5
창조적인 관계란 각자의 독특함이 상대방 안에존재하도록 하여 서로를 풍성하게 하는 인간관계를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 하모니를 이루시며 사랑하며 동역하시는 모습을 볼 때,우리도 서로의 관계가 그러하기를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