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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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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Ⅴ

2016년 12월 6일 화요말씀치유집회 메시지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지난주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 대한 내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 나누고 싶은 말씀은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하나님 중심이지 내 중심이 아닙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 받아 구원을 얻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죽고 난 다음에 천당 간다는 전통적인 복음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의 복음관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과는 다른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시며 각 마을과 동네를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믿기어지지 않을 만큼 좋은 소식인 그 복음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나라”라는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라”라고 하면 nation, 공간적인 영역을 차지하는 눈에 보이는 실체, 어떤 나라, 국가를 의미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도 하나님 나라를 공간적 영역의 국가로 생각하여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언제 다시 다윗왕국이 재건됩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는 히브리어로는 <말쿠스>, 헬라어로는 <바실레이아>이며, 어떤 공간적인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와 주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왕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들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할 때, 영어로는 Kingdom이라고 쓰며 King’s dominion, 즉 왕의 지배, 왕의 통치, 왕의 주권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지만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자는 너무나 적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신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의 심령 안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과 육을 통치함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 심령으로 새롭게 되는 삶, 주의 뜻을 이루는 삶,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주기도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의 뜻은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재림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워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누가복음 17장 20~21절의 말씀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며,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언제 다윗왕국이 재건되느냐는 의미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당신이 왕이 되어서 마침내 이 로마의 모든 지배를 없애고 다윗 왕국을 재건하는 분이십니까?” 바로 이스라엘 민족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그런 의미의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말하는 나라가 언제 옵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시공간 안에 제한된 곳에서 어느 장소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in you, among you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물질주의와 주지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내가 아는 것만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써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영광의 임재는 성령 강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것을 알리시며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때 바로 마귀가 통치함으로 일어나는 모든 환난과 고난, 질병, 사망을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여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질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수많은 일들을 이 공생애 동안에 행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마귀의 통치가 사라질 것이고 본래 하나님이 뜻하신 세상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8 

 

누가복음 17장 20~21절의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라는 말씀과 마태복음 12장 28절의 “내가 성령에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의 강림하심과 하나님 나라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때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셨고, 모든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로 침노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모든 자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성령에 사로잡히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임하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로 침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이 땅에 주의 뜻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을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우리를 자녀 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자녀 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죄 없는 예수님, 인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우리가 연합할 때에, 우리의 옛 본성, 옛 본질은 떠나가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는 산 자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이고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성령님이 강림하실 때인 것입니다. 성령님이 강림하신 일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이 죽으시고 난 다음에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들어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지금부터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파되리니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침노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뜻은 나라가 아직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천 년 전에 오순절 강림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 14절에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은 이 땅의 수많은 신자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지만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자는 너무나 적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신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의 심령 안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과 육을 통치함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 심령으로 새롭게 되는 삶, 주의 뜻을 이루는 삶,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생각으로, 내 감정으로, 내 노력으로, 내 절제로 예수님처럼 닮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뜻은 무슨 뜻입니까? 이미 이천 년 전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지만 오늘 이 시간 나에게 임하여 주셔서 내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의 나라의 삶은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변화에서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지만 말씀 밖의 일을 행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더럽고 추하고 악하지만 오늘도 하나님은 손발이 묶여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기름 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지혜가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각종 은사가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통해서 이 땅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땅 끝까지 선교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므로 이 세상을 한꺼번에 다 바꿀 수도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지으시고 이 땅에 모든 다스리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만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9:1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12:32

 

우리는 죄를 지음으로 그 권세를 마귀에게 팔아넘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천 년 전에 다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다시금 그 통치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을 다스리며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이천 년 전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지만 오늘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기를 원하는 기도가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강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통치가 우리 안에 일어난다는 것은 바로 다른 말로 성령 충만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내 생각대로 내 지혜대로 내 권세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나타내는 삶을 산다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 삶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저는 여러분들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기름 부으심 받기를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너무 소중합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을 내 지식으로, 내 이성으로 공부하는 것은 지식일 뿐이지 생명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에 생명이 임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에게 사로잡혀야 하며, 말씀은 성령님이 조명해 주셔야 합니다. 그 말씀에 성령님이 나타나셔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성령 하나님에게 사로잡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자기를 맡기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성령 세례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령 없이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인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일평생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만이 나를 따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일평생 마귀에게 속아서 내 마음이 나라고 믿는 “거짓자아”에 속아서, 거짓 자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하신 복음의 핵심은 바로 거짓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누구인지 알고,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서 나타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멘! 그런데 그 성령님께 귀 기울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내 눈에 보이는 것, 내가 지금 배운 경험과 지식으로 제가 드리는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는 성령님이 함께 계시고 그분이 나에게 찾아오시고, 내 주파수가 그분의 주파수에 맞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육신으로 현실 세계에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하나님의 생명이 운행하고 계십니다. 내 주파수를 거기에 맞출 때에 그 하나님의 생명이 나를 통해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름 부으심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기름 부르심 받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눈에 보이는 오감에 국한된 삶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도 아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는 더럽고 악한 어두움의 세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별해서 하나님의 빛의 세계에 접속할 때부터 그의 나라로 침노해서 그의 나라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삶을 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에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그의 자녀인 우리를, 그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 코에 생기,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 넣으시고, 이 땅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통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멘! 하나님이 그것을 포기하신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생명이라도 찾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한 생명이라도 찾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6:38-40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 40절을 살펴보면, 결국 아버지의 뜻은 잃어버린 자녀를 당신의 자녀로, 친 백성으로 다시금 회복시키시고 본래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우리에게 모든 권세를 주시고 이 땅을 통치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뭘 의미합니까? 이것은 한두 마디의 설명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십자가를 마지막에 지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그분이 죽으심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처럼, 그 분이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인해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19:30 

 

이 사실과 더불어서 우리가 가장 핵심적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몇 구절이 더 있습니다. 요한계 시록 12장 7~11절의 말씀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카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리 형제들을 참소하던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12:7-11 

 

여러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본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아무런 죄악 없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서 그분께 영광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 인하여 사탄, 마귀들이 밤낮으로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서, 이 땅에서 죄를 짓는 우리를 참소하고 비난하고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다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엔 큰 전쟁이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지시고 다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나라와 권세와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마귀는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으로 내어 쫓겼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면 12장 말씀에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
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엡1:21-22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9-10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통치와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계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 모든 피조물의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땅 아래와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이름을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모든 영광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권세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그리하면 너희 안에 기쁨이 충만하리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은 마귀가 떠나 간 것입니다. 쫓겨나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 땅에 있는 마귀를 쫓아내어야 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는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내 안에 나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령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름 부으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하늘에서는 밤낮 하나님 앞에서 참소하던 마귀들이 쫓겨났지만, 이 땅에서는 어떻게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요한계시록 7장 11절 말씀을 보면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 하였도다” 이 땅에서 주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내 목숨이 경각에 달려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그분이 흘린 피로 말미암아 내가 죄 사함을 받고, 주의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땅에서 주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눅10:17-19 

 

누가복음에서도 칠십 인을 보낸 그 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와 같이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그와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사용할 때에 마귀들이 번개처럼 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단지 하나님에게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이 주기도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신자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해야 될 기도라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두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적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부터 미래적 하나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인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후에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사는 것이며 성화되어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주기도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의 뜻은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재림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워야 합니다. 질병을 몰아내야 합니다. 가난을 쫓아내어야 합니다. 아멘! 그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은사 주는 것은 끊임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기름 부어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모든 약속을 주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루어진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심어,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선포하는 것이 자녀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마귀가 한 일 고백하며 다니지 말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심은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신학자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서론이고, 주기도문의 앞 세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며 나머지 세 부분은 우리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기도문의 후반 세 가지 기도는 전반부 세 가지 기도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말하고 있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통치로 말미암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주기도문의 여섯개의 기도는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기도가 따로 있고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기도는 전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16:4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0-33 

 

우리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구약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생각합니다. 먹을 양식을 생각합니다. 만약에 주기도문을 전반부 세 개가 하나님에 대한 기도이고, 후반부 세 개가 우리에 대한 기도라면, 우리는 분명히 먹고 살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먹을 양식, 즉 육적인 양식을 주셔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만 전후반 기도가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기도라면,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은 결코 우리가 말하는 육적인 음식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관점에서 이것을 본다면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마귀에게 이끌려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에 마귀가 제일 먼저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덩이를 떡덩이로 되게 하라”고 말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육적 양식인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4:4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4:32-34 

 

또 한편으로 수가 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이 그 여인과 대화할 때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갔습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에게 드렸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 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양식을 볼 때 양식은 육의 양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그 핵심이 무엇입니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을 우리에게 무엇으로 주셨습니까?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의 뜻을 이룸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즐거워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내 삶의 존재의 이유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양식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이룰 때 말씀 안에는 질병의 치유, 마귀로부터 해방 받는 것, 오늘 먹을 양식 모든 것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얼 먹고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생명의 떡,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일용할 양식”에서 신학자들이 지금도 “일용할”의 뜻에 대해 가지각색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취합할 때에 “일용할”이란 뜻은 ‘지금 이 순간부터 24시간 동안’, ‘절대적으로 필수적인’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무엇입니까? 그 말은 우리가 보낼 하루 동안 우리 자신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지 않고, 주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오늘 나에게 주신 필요한 약속의 말씀을 받아서 이 땅에 실체로 이루어가는 것이 내 삶의 이유입니다.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는 this day, 지금, 지금 여기, 오늘입니다.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와 자신 안에 있는 왜곡된 믿음을, 이미 지나간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기억으로 되살려서 그것이 나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지금 이 순간의 생각으로, 그 미래를 끄집어내어서 염려, 걱정하고 사는 것이 우리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은 지금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허상 가운데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심리적 시간과 상상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오늘도 그분은 영원히 현존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 없으면 내 존재도 없는 것이고, 그분이 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 숨 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분이 지금 현존하시기 때문에 그분 안에서만 내 생명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4절의 말씀처럼 나의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생명이 없으면 내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히 현존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생명 가운데서 우리는 그분이 보는 이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의 허상으로, 염려, 걱정, 근심, 불안, 두려움, 수치, 죄책감 그것으로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이렇게 기도할 때에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해 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마귀한테 휘둘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하기를 원하고 교만하지 않기를 원하지만, 우리를 꼬리처럼 만들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절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우리가 회개하면 절대로 기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루어진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심어,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선포하는 것이 자녀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주기도문의 여섯 개의 기도는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기도가 따로 있고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기도는 전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오늘 나에게 주신 필요한 약속의 말씀을 받아서 이 땅에 실체로 이루어가는 것이내 삶의 이유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지, 하나님이 우리 미래를 어둡고 어렵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상상과 과거의 경험에 기초해서 질병에 대해서 3개월 남았다고 하던데, 수술해도 안되던데 라고 말하는 것은 당신이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치유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더 하나님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풍성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오지도 않는 미래를 붙들고 당신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도하기 전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올바르게 알지 못하면 여러분이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왜 우리는 일주일도 아니고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일주일만이라도 양식을 얻는다면 우리는 그 양식에 의지하지, 그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의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이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 신앙의 정도입니다. 지금 이 순간 현존하시는 그 분과 생명적인 관계를 가질 때 자녀가 되는 것이 나의 삶입니다.

 

저는 요즘 “페이스북”을 쓰면서 생명적인 관계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몇 줄 안 되는 것이지만 매일 써야 하니까 그분 없이는 쓸 수가 없습니다. 매일 그분과 교제해야 그분에 의한 글을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내 마음으로 만든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세상에서 일용할 양식을 먹고 사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입니다. 그 분과의 끊임없는 교제를 서신서에서는 사도들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멈추는 죄를 범하지 말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결국 마귀의 밥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면 하루가 다 잘 될 것이라고 망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하루 전부가 하나님이 보호하실 것이라는 착각과 속임수에 속아 살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합니다. 기도는 그분과의 교제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이신 그 분의 불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손발과 입술과 태도를 통해서 그분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있어야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을 행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아버지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알아야 되는 것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로얄 킹덤 패밀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로 유업을 이어가는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이고 한 가족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기도를 하나하나 나눌 수가 없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주기도문에는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구
원, 십자가, 믿음에 대해서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신구약의 모든 계명을 합쳐 놓은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이해하고 주기도문의 방식대로 기도할 때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보아야 하며,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말씀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있을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알지 못하면서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이 땅에 주의 뜻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또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사실은, 말씀과 성령을 분리한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철학자가 될 수는 있으나, 결코 하나님의 생명은 나타내지 못합니다. 말씀과 성령은 하나입니다. 아멘! 여러분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주시옵고”를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회개와 용서입니다. 그분이 항상 과거에는 성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났지만, 이제 때가 이르면 그리심 산이 아니고 성전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령이 계시는 성전의 전입니다. 그분이 쉐키나, 하나님의 영광이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전을 청소해야 합니다. 그 성전을 청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며, 우리의 틈을 노리고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해야 되는 기도가 무엇입니까? 내가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기도로,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묶이지 않도록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있어야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하고, 마귀에게 묶이지 않을 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 열쇠입니다. 여러분 천국열쇠를 가지고 교회 밖으로 나오셔서 당신의 일터, 삶터에 어둠 가운데에 있는 문을 열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열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치유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더 하나님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풍성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오지도 않는 미래를 붙들고 당신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기도를 하나하나 나눌 수가 없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주기도문에는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구원, 십자가, 믿음에 대해서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신구약의 모든 계명을 합쳐 놓은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이해하고 주기도문의 방식대로 기도할 때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주기도문을 이해하면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내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정말 분노가 납니다. 첫 번째로는 얼마나 오랫동안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마귀의 자식으로 살았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해서 분노가 납니다. 두 번째로는 그동안 누리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분노가 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부터 누려야 될 일인데 10년, 20년, 30년을 신앙생활 했는데도 불구하고 헛세월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유업,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산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동일한 마음을 갖기를 축원합니다. 억울해 하기를 축원합니다. 많이 아쉬워하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놀라운 삶을 알거나 누리지도 못하고, 죽고 난 다음에 천당 간다는 이유만으로 신앙생활한 것을 억울해 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 마음을 바꿉시다. 주의 나라가 임함(God‘s Kingdom come)으로 인해서 나의 나라(My Kingdom finished)가 끝나버렸습니다. 주님을 나타내는 주의 나라의 삶을 살겠습니다. 내 나라 이제 접겠습니다. 주님, 수십 년 동안 살아봤지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충만함 없이 여전히 욕구에 갈급하고 결핍에 헤매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제 내 나라 문 닫겠습니다. 주의 나라가 나에게 임했습니다. 우리 그렇게 기도합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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