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새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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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1. 왜 주기도문이 필요한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산상수훈은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하나님나라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바로 그 하나님나라의 삶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바로 주기도입니다.
1)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리도록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생각해 봅시다. 복음의 핵심은 ‘관계회복’과 ‘하나님의 체험적 나타나심’입니다.
복음은 타락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잃어버린 하나님 아버지와의 올바른 관계를 다시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롬1:1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것 같이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과 나(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의 관계회복, 그리고 우리의 관계회복,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나라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13:34-35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나가 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온전히 하나 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삶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관점과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게 합니다. 즉, 하나님의 관점과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자기애(自己愛)만을 가지게 되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들어오고 흘러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주기도문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관점과 관심을 다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로 돌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임하고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됩니다.
2)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좋게 여기고 옳게 여기는 수단과 방법을 따르지 말아야 하며,
그들과 동일한 방향으로 걸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인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만족하십니까? 정말 변화된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주기도문을 다시 배우고 새롭게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분명히 변화될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3)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약속의 말씀을 이 땅에서 실체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도가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은 현실세계와 초자연적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을 새롭게 배우면 여러분의 삶에서 분명히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며 소망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삶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2. 주기도문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한 전제들
1) 먼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자체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애와 사역,
전하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며, 그 기도를 배운 제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나라의 복음(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시작되었다는 좋은 소식)”이
“하나님나라(죽고 난 다음에 가는, 천당으로 인식되는 곳)”와 “복음(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아 구원을얻은 것)”으로 나누어진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복음은 받아들이지만, 하나님나라는 죽고 난 다음 가는 천당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적 하나님나라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늘 미래적 하나님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기도에 따른 성취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취를 누리기보다는 재림 때 이루어질 성취만을 여전히 소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오순절날)” 이후를 사는 우리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미 시작된(already but not yet)
현재적 하나님나라에서 주의 뜻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오직 육신을 가진 자녀들에게만 이 땅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분의 자녀들을 통해서만 이 땅에 주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저주 가운데 있어 그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써 주의 약속을 받아내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벗어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며 그분의 영광 안에서
타락한 세상을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키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과거 율법주의적(행위 보상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에 따른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또한 인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2) 주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인 주기도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에 실제로 기도하시던 그 기도의 방식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고, 그 선포에 따른 실체를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과 같이 기도하시면서 매일 하나님과 교제하셨고, 주의 뜻을 이루셨고, 마귀에게 승리하셨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셨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들이 하는 기도는 예수님께서 드리는 기도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당신이 하신 것과 동일한 기도를 가르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제자들이 기도에 따른 실체의 경험을
아직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실제적 체험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 이후,
즉 현재적 하나님나라의 도래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잘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주기도를 가르치셨던 시점은
예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아직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시점입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나라의 도래가 일어난 것을 전제로 하여(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시점에서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제자들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고 주의 뜻을 이루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앞으로 일어날 일(하나님나라의 도래와 하나님의 자녀됨)을 이미 일어난 일로 전제하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예수님처럼
기도하며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될 제자들(그 당시 그 시점에서 제자들이 아직 자녀가 되지 않았지만)이
앞으로(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영원히 함께 하시는 동안)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주기도의 첫 문장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도는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을 기대하면서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가 드리는 기도입니다.
3) 주기도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기도문은 단순히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서 청원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앞으로 행하실 일들로 인하여(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을 전제로 하여,
그 결과로 약속하신 말씀이 이 땅과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일어나도록 구하는 기도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단지 미래적으로 청원하는 기도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주기도문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도입니다.
지금의 시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신 “그날” 이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이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적 삶을 사는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그 당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미래적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과 같은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것에 기초하여 현재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용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이 기도문을 그 당시의 시점과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도래한 하나님나라의 시점과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나라(통치)를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은 이미 그분의 통치가 임한 것을 전제로 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라가 임하옵시며”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그 나라가 임했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나라가 실제적으로 임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이미 주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실체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그 약속을 간구하고 청원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에게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여전히 구약적 사고방식에 기초하여
해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주기도문은 우리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만 그 놀라운 기도의 비밀이
풀어질 수 있는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지키고 행해야 할 기도내용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약속을 우리가 이루어나가야 할 내용입니다.
† 주기도문은 하나님나라가 임하시도록 청원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미 임하신 하나님나라에서 주의 자녀로서 어떻게 주의 뜻을 이루어 가는가를 가르쳐 주신기도입니다.
† 주기도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나라의 운동을 하는 킹덤빌더(자녀+제자)를 위한 기도입니다.
† 주기도문은 가르쳐 주신 대로 단순히 암송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관점, 내용, 틀에대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에 준하여 각자의 상황에 적용해야 합니다.
† 주기도문은 단지 소망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현재적 하나님나라에서 기사와 이적을 이루는 가장 강력하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도입니다.
3. 주기도문의 개요
1) 기도할 때 … 같이 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그 당시 회자되었던 기도와 다른 기도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마태복음 6장 5-8절의 말씀과 9절의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행하던 기도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고
새로운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전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을까요?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6:5-8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골방에 들어가서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로 기도의 방법, 장소,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기도 방법: 외식하는 자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크라테스’의 본래 뜻은 연극배우입니다.
연극배우는 다양한 역할과 신분을 극중에서 나타내지만, 그것이 실제 자신의 삶은 아닙니다.
연극배우의 본질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객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단지 역할에 맞는 분장을 하고 그 역할을 나타내는 행위와 태도를
나타낼 뿐입니다.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나타내어야지 다른 사람과 관계할 때 나타내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뜻이며, 기도할 때 연기하지 말라는 뜻인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 거룩하게 보이려고 하거나,
자신의 본심이 아닌 거짓으로 꾸민 마음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지 않고 말씀을 다양하게 활용해서 듣기에 그럴듯하게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 기도 장소: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우리의 육적인 삶이 기도하는 동안 세상과 단절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활동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없는,
그리고 세상적인 것에 묶이지 않는 한적한 곳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밀한 중에 계신”의 의미는 단지 물리적 세계로부터 차단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모든 역동성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몸은 격리되었지만 마음은 언제 어느 곳으로라도 갈 수 있으며, 무슨 생각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참뜻은 세상이 나에게 대해서 내가 세상에 대해서 죽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육신의 눈이 닫히고 마음의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상태는 물리적으로 ‘조용한(quite)’ 곳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모든 역동성(감각을 통하여 자아를 의식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라지는 ‘은밀한(silent)’ 곳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기도 내용: ‘중언부언’은 헬라어로 ‘바탈로게오’이며, 동일한 말을 반복적으로 간절히 오랫동안 하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행하는 주문입니다. 인간은 신적인 대상에게 간절하게 오랫동안 계속적으로 빌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종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물을 떠놓고 간절하게 빌던 것을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도록 간청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하시도록 일깨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기도문이 어떤 기도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우선 “너희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바로 구원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 하나님의 가족이요 자녀가 된 자, 이 땅에서 주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 즉킹덤빌더를 말합니다.
“그러므로”는 이전에 알고 있었던 것과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사용되는 접속사입니다.
또한 “이렇게”라는 의미는 “이러한 방식으로(KJV; After this manner therefore pray ye/ NIV;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 NASB; Pray, then, in this way)”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전의 기도와 같이 반복하여 외우는 기도가 아니라,
가르쳐 주시는 기도의 방식에 따라 각자의 경우에 맞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기도하라”는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알려 주시고, 그 복음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의가 되심으로 주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삶을 친히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우리는 모든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도문을 읽다 보면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렸던 그 방식과 내용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 전부가 들어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더 이상 육으로 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난 자이며,
우리의 이름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기도문을 각자의 상황에 적용하여
기도할 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 가운데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