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오매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이다!
KINGDOM LIFE &
비즈니스
아들이오매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이다!
제10기 KBS 수료 이익재
지난 해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부를 맡게 되었고, 회사 설립 이래 가장 규모가 큰 신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외국계인 저희 회사 입장에서 새로운 사업부라 함은 본사가 있는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해 왔던 분야이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진출하는 분야이기에 국내의 고객들에게는 신생기업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해당 프로젝트의 경쟁업체는 고객사와 이미 수 년 전부터 거래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별 문제 없이 거래관계를 잘 유지하여 왔으며, 설상가상으로 저희가 제안한 가격이 경쟁업체에 비하여 30% 이상 높은 상태로 고객사의 예산을 초과한 상태라서, 객관적으로 볼 때 저희 회사가 이 일을 맡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주님만이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실 수 있음을 고백하고, 관계자들의 마음이 저희에게로 향하도록 지속적으로 선포기도를 하고 이 프로젝트 수주를 동료 사역자들의 중보기도제목으로 올렸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최종적으로 가격이 조율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저희의 가격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15:13
I pray that God, the source of hope, will fill you completely with joy and peace because you trust in him.
Then you will overflow with confident hope through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Romans15:13
몇 주 전 주일 HTM 사역자 기도모임에서 손 장로님께서 증거하신 말씀 중 로마서 15장 13절의 말씀입니다. 제가 늘 보던 개역개정/NLT 한영 성경에서 그 본문을 읽는데 그날따라 “믿음”의 영문 표기가 “Believe”가 아닌 “Trust”로 번역되어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이제껏 살아오며 일상적으로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믿어왔고 또 믿으라 말해왔지만, 그날 로마서 15장 13절 말씀으로 “믿음의 의미와 성격(?)”에 대하여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The time promised by God has come at last!” he announced.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of your sins and believe the Good News!”Mark1: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막11:22
Then Jesus said to the disciples, “Have faith in God” Mark11:2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Trust in God; trust also in me. John14:1
위에 인용한 본문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매일(!) 접하는 복음서의 말씀에서도 우리말 “믿음”에 대한 영문번역은 상황과 메시지의 성격에 따라 “belief/believe”, “faith/faithful” 및 “trust” 등으로 달리 번역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되었고, 이 지면을 빌어 평소 품어왔던 “믿음의 성격”에 대한 저의 생각과 체험을 자매, 형제님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참고로, 제가 평소 즐겨보는 컴퓨터 성경을 조회해보니, 개역개정본 신약에는 “믿음”이라는 한글단어가 명사/동사형 포함 약 262회가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만, NLT 영어번역본에는 “Trust”가 약 80여회나 언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belief(동사형인 believe 포함)가 더 많았습니다만.
앞에서 말씀드린 프로젝트 수주를 기도제목으로 정하고 틈틈이 기도를 하면서도, 객관적으로는 조건과 환경이 불리한 것이 사실이었기에 과연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회의가 순간순간, 심지어는 기도 중에도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꿈틀거리며 올라와 의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곤 하였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의심으로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아들이오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로 ‘의심의 영’을 쳐내고 마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아멘!
알거나 체험하지 못한 것을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믿음
우리는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는 것에 대한 진술 혹은 명제를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찬성, 동의, 승인 등의 뜻을 의미하는 “믿음”에 대한 단어로 consent나 assent가 사용되기도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서는 belief(a feeling of certainty that something exists, is true, or is good)와 같은 단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명제를 복음서에서 찾아본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하신 하나님의 외아들이라는 것’,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신 것’,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 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대척점에 “의심”이 있습니다. 현실세계에서도 ‘믿음의 눈’이 아닌 ‘세상적인 육신의 눈’이나 ‘의심의 눈’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제가 출석했던 교회에서 배웠던 ‘믿음’이란 것은 이러한 기록들에 대한 ‘동의 혹은 찬성으로서의 믿음’이었고 그런 성격의 믿음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흔히 ‘믿음이 좋은 자매 혹은 큰 믿음을 가진 형제’ 라고 하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니 의심 없이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모두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으며, 이러한 형태의 믿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전형적인 ‘믿음’이라 배운 것이지요. 제 자신도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깨닫고 킹덤빌더가 되기 전에는 이와 같은 믿음이 믿음의 전형인 것으로 잘못 알고 살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복음의 진리’를, 단순히 어떠한 명제에 대해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동일시하는 시각 혹은 이해로 설명하는 기독서적을 본 기억도 있기는 합니다. 사실 이런 류(類)의 믿음도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킹덤빌더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성격 혹은 종류의 믿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나를 부인하고(혹은 나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내 안에 살아계신 그분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기는 형태의 믿음이 더욱 더 중요합니다.
회사 일과 관련하여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고백하고 기도하는 중이었기에, 성령님께서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실 것을 믿고 맡기겠다는 각오로 오로지 성령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떼쓰며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진행 중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느닷없이 본사의 해당사업부 담당 부사장이 아시아 출장 중 한국에 오겠다고 하더니만, 자신이 집행 가능한 연구개발 자금의 일부를 예산심의위원회의 심의도 없이 예산 일부를 전용하여 사업지원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또한 고객사의 기술평가부서로부터는 신규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기술 평가점수를 부여받는 등 성령님께서 친히 그들의 발길을,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시고 주관하셨음을 알 수 있는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들을 잘 알지 못하였을 뿐더러, 새로운 분야라서 기술적으로 설득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던 지라 성령님이 아니시면 불가능한 일들이었던 게지요.
믿고 모든 것을 맡기는, 신탁하는 믿음
우리가 이러저러한 어려운 일로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종종 인간적인 혹은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을 때가 있음을 경험합니다. 이때 내가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향해 ‘나는 하나님만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때의 믿음과 같은 믿음이 있지요. 이때의 믿음은 앞에서 말씀드린 성경 속 이야기나 교리 같은 것을 참말로 받아들인다는 것과는 그 의미나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어떤 진술이나 명제, 교리와 같은 것을 믿는 것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의 신의와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라 하지요. 영어로는 Trust(a belief that he/she is honest and sincere and will not deliberately do anything to harm you)로 앞의 로마서 15장 13절의 말씀과 같은 류의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믿음의 경우라면 나의 전 재산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대상, 즉 세상적으로는 명성 있는 은행이나 금융기관 등을 ‘신뢰하는 믿음’, ‘아무 걱정 없이 턱 믿고 맡기는 믿음’ 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14:28-29
베드로가 천 길의 깊은 바닷물로 뛰어 내려 자신을 턱 맡기고 떠 있을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잔뜩 긴장하고 허우적거리며 가라앉고야 마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예수님의 뜨게 하실 수 있음’을 믿고 거기에 의탁하는 믿음이 그것이겠지요. 손 장로님께서 힘주어 강조하시는 행하는 믿음, 말씀을 받은 뒤 그 말씀에 따라 행하는 중 혹은 그에 이어서 치유와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그런 류의 믿음 말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반대 개념은 의심이나 불신이라기보다, ‘걱정의 영, 불안의 영, 두려움의 영에 사로잡힘’이라고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에 우리는 근심과 염려, 걱정과 두려움에서 자유케 되는 것이지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6:30-32
예수님이 우리에게 강조해서 가르치려 하신 믿음도 바로 이런 류의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사랑이신 그분의 은혜를 믿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에 침노’하지 못한 주의 백성들이 늘 불안과 초조, 근심과 걱정, 스트레스와 긴장이 많은 세상을 살아내는(?) 오늘날, 이런 “신뢰하는 믿음”, “마음 놓고 턱 맡김의 믿음”은 어떤 진술에 대한 승인이나 동의로서의 믿음보다 더욱 중하고 “우리를 해방시키며 자유를 주는 믿음”이라 믿습니다.
1859년 여름, 한 곡예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치해 놓은 밧줄 위를 걸어 미국에서 캐나다로 건너가는 퍼포먼스가 있었습니다. 이 아찔한 줄타기의 주인공은 프랑스 곡예사 찰스 블론딘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밧줄 위에 서서 온갖 위험한 동작을 해내며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하지요.
그가 세계 최초로 시도한 나이아가라 외줄타기 곡예 현장에도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고, 이곳에는 약 48 미터의 높이에 로프가 설치되었지만, 그는 장대로 균형을 잡은 채 한 발 한 발 밧줄 위를 걸어 폭포를 건넜을 뿐 아니라, 뒤로 건너기, 눈을 가리고 건너기, 자전거를 타고 건너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외줄타기 현장에 있지 않았고 동영상 등으로 본 적이 없었기에 사실 여부를 믿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곡예가 끝날 때쯤 되어 블론딘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관중을 향해 소리칩니다. “당신들은 내가 사람을 등에 업고 이 폭포를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러자 관중은 “믿습니다!”라고 외쳤고, 그러자 블론딘은 “그럼 내 등에 업혀서 나와 같이 이 폭포를 건너갈 사람 한 분만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마침내 그와 동업자 관계인 매니저 콜코드라는 사람만이 그의 등에 업혀서 건넌 것이지요.
우리의 믿음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이 시간 “아멘!”하고 무수히 외쳤으나 천길 바닷물로 나를 던지지 못했던 지난날을 회개합니다. 나의 모든 문제를 그분의 손에 올려드리고 그분께만 의지하는 그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믿음직스러움의 믿음
누군가가 내게 믿음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 믿음직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영어로는 “faithful” 이라고 할 수 있는 “성실함”으로서의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사전의 설명을 보니 faithful한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나 사랑하는 사람 외의 다른 이를 곁눈질(?)하지 않는 사람(Someone who is faithful to their husband, wife, or lover does not have a sexual relationship with anyone else)이라 설명하고 있군요.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수24:20
이러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께만 충성을 다한다는 뜻으로, 이러한 믿음의 반대는 우상숭배가 되겠지요.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이러한우상숭배의 행위 등을 막는 것만이 믿음의 전형인 것으로 배우고 있지는 않은지요? 재물이 우상이었고, 출세가 우상이었고, 자식이 우상이었던 때가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킹덤빌더로서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믿음은 순종하고 믿고 맡기는 믿음으로, 그분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는 믿음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부인함으로 ‘내가’가 아닌 ‘내 안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라는 믿음 말이지요.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1:38
개인적으로는 손 장로님의 집회 메시지 중 마리아의 순종이 참으로 귀하다고 하셨던 말씀이 참으로 귀하게 기억됩니다. 그래서 평소 가장 자주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탭북 첫 화면에 “아들이오매 내게 말씀이 이루어지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주만물을 그리고 우리를 계획하셨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지으신 분입니다. 늘 함께 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질병이 어떠할지라도, 우리의 문제가 어떠할지라도, 우리가 온전케 됨이, 우리가 형통케 됨이 그분들께서도 원하시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그리고 그분들께는 그런 일들이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기보다도 더 쉬운 일임을 믿고 맡기는 믿음으로 나아가시는 자매 형제님이 되시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