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LIFE &
상담
수치 정체감 VS. 하나님 자녀의 정체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지난 학기 교육 대학원 수업 중에 있었던 일입 니다. 교육대학원의 학생들은 주로 현직 교사들 입니다. 교육대학원에 다니는 교사들은 낮에는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일과를 마치 고 나면 대학에 와서 대학원 학생으로서 배우게 됩니다. 상담이론 시간 중에 한 교사가 자신의 수 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교사 는 중학교 수학교사인데 수업시간에 칠판에 수식 을 적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적고 있는데 한 학생이“저기요, 선생님. 거기 틀렸는데요!”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순간 이 교사는 얼굴빛이 하얗 게 되면서 너무 당황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고 합니다. 너무 창피해서 아무 생각 도 나지 않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책을 덮 고 황급히 교실을 빠져 나왔다고 합니다. 본인이 왜 그렇게 교실을 나왔는지 어떻게 걸어나왔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교무실에 와서 한 참을 지난 뒤에 조금씩 정신이 들면서 너무 창피 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잠시 후에는 틀렸다고 지 적한 그 녀석이 너무나 밉고 원망스럽워 화가 나 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선생인 나한테 그렇게 대놓고 틀렸다는 말을 할 수가 있어? 괘씸한 녀 석, 두고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교사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요? 일반 적으로 이 교사와 같은 행동을 수치 반응(shame response)이라고 합니다. 수치 정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잘못을 하거나 실수했을 때 그것 에 대해 수치 반응을 보입니다. 수치 반응과 구분 되는 것을 심리학에서 유죄 반응(guilty response)이라고 하는데, 실수나 잘못을 하게 되면 잘못한 특정행위에 제한하여 상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과하고 적절한 피해보상을 함으로써 상황을 수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런데 수치 반응은 자신이 실수한 행위를 사람, 즉 자신의 존재 전체로 확장해서 생각함으로써 자기 함몰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자신에게 신경을 쓰 느라 상황이나 상대방을 공감할 심리적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수치 반응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실 수를 하거나 잘못하게 되면, 자신을 감추는 행동 을 하거나 회피하거나 합리화하거나 변명하게 됩 니다.
때로는 잘못을 추궁당하며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다고 느끼면, 자신이 잘못해 놓고도 도리 어 화를 내고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실수하거나 실패해서는 안 된다 는 완벽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어 느 한 부분은 허술해서 자신의 모습을 자기 스스 로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완벽한 체 해야 하므로 항상 긴장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들키지 않으려고 가면을 써야 하기에, 내적으로는 안개 같은 외로움이 항상 있습니다. 막연한 불 안감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자신이 행동했던 상황을 떠올리면서‘그때 그랬어야 했 는데….’하면서항상아쉬움을가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감이 쌓이게 되어 내적으로 깊은 절망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들이 수치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수치 정체 감(shame identity) 때문입니다. 정체감은 자기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와 관련된 개념인데, 수치 정체감은 자기 자신에 대해‘나는 수치스럽 다. 나는 오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수치 정체감을 갖게 되는 걸까요? 수치 정체감의 원인은 학대(abuse)입니다. 여 러분은‘학대’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시는지요? 학대는 주어서는 안 될 것을 주는 행위와 반드시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현 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능동적(의도적) 학대는 의 도적으로 언어, 정서, 신체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의도적 학대는 학대하는 사람 이나 학대당하는 사람 모두 학대라는 것을 인정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동적(비의도적) 학대는 부모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들이 외상을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생계문제로 아이들을 적절히 보살필 수 없어서 방치나 방임 하게 되면, 부모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깊 은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능동 적 학대는 주어서는 안 될 것을 주는 것이고, 수 동적 학대는 주어야 할 것을 주지 못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학대는 정서적·언어적·성적 폭력 가운데 성장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무관 심과 방치 가운데 성장하게 되는 경우, 또는 가난 하거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부모에게서 성장하 게 되는 경우, 부부갈등으로 버려지거나 부모의 외도로 복잡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하게 되는 경 우, 중독, 만성질환, 인격 장애를 가진 부모 또는 수치감을 주는 완벽주의적인 부모, 과잉보호하거 나 편애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하게 되는 경우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언급한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학대를 경험하며 성장하게 될 때 수치 정체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사실 그러한 것들 은 내 자신과는 잘잘못과는 무관한 하나의 사건 또는 환경 그 자체에 불과한 것인데, 그 사건이 존재로 보편화되어서 내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즉 내가 경험한 수 치스러운 사건이 나의 수치 정체감이 되어 버리 는 것입니다. 수치 정체감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 로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수치 정체감을 가진 사 람들은 자신에 대해 오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 문에‘나에겐 남들에게 말 못할 부끄러운 비이 있다. 나는 오점과 흠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부 끄러운 존재다.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끊임없이 나의 가치 를 증명해야 한다.’는 식의 자아상을 갖기 때문 에 이러한 오점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자신을 싫 어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 은 통제의 문제를 낳게 됩니다.‘ 나는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겨야 한다. 나는 더욱 완벽해져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통제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정서적 자양분이 필요합니다. 정 서적 친근감과 소속감을 느낄 부모가 필요합니 다.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부 모, 자녀의 문제를 자기 일처럼 뛰어들어 깊은 관심과 열정으로 배려하고 보호해 줄 부모가 필요 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함께 기뻐할 부모, 자신 의 한계에 함께 울어주고 이해해줄 수 있으며 새 로운 대안으로 가이드해 줄 부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무섭고 두려울 때 안정을 줄 수 있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웅적 부모가 필요하고, 자신 의 잠재력을 인정해 주고 일깨워주는 부모가 필 요합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부모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기본적인 정서 적 필요들이 제대로 채워지지 못하거나 부모에게 기댈 수 없을 때, 아이들은 부모의 의도와 관계없 이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제가 상담 분석을 받을 때 동료 상담자 들과 모여서 넋두리처럼 하던 말이 있습니다. “결국은 또 아버지더라!”라는 말이었는데, 제가 겪고 있는 현실의 여러가지 문제로 상담을 시작 했지만 결국 그 문제는 제 자신과 부모 사이의 관 계 역동에서 발생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 었을 때 하던 말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문제는데 분석해 보니 결국 제 자신과 아버지 사이의 관계에 본질적인 원인 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상담을 배우면 서 현실의 부모와 어릴 때 맺었던 관계의 역동과 그 향력이 절대적이고 그것이 모든 문제의 원 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후 인간의 고통의 본질적 원인을 깨닫게 되었습 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나의 깨어진 관계습니다. 육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나 지금까 지 살아온 경험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 경 험들의 향 안에서‘나’를 생각하며, 그러한 삶 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왔었습니 다. 아니 그렇기에 그 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내가 너의 아버지이고 내가 너를 낳았고 너 는 나의 자녀다.”라고 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139:15-16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활용되는 숨겨진 출생의 비이 드러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출생의 비을 그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 충격이었고 또 한편 너무나 기뻤습니다. ‘내가 그동안 엉뚱하게 고통 받았구나!’,‘ 이제 더이상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는구나!’하는 생각에 마치 감옥에서 탈출한 듯한 해방감을 느 꼈습니다. 그 뒤로는 길을 가다가도 하나님께 기 도할 때도“하나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여서 너무나 감사해요!”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 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일3:1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시라는 사실, 그 진리는 내가 그동안 고군분투해오던 삶의 모 든 문제와 고통들로부터 저를 한 순간에 해방시 켰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2
혹시 지금 삶의 문제들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파트너가 계신지요? 그렇다면 한 가지만 기억해 보십시오.
“내가 누구인가? 나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나님 아버지는 정말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육신의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은 완벽하지 못했 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고 나 를 사랑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믿을 만한 분이십 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경험과 과 거의 기억들에 매여 고통 받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제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 자녀로서의 새 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게 진리이니까요! 사실이니까요!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 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5: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2:16-17
찬송 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