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DOM LIFE &
힐링시네마
블라인드 사이드
작가 이애경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먼저 해드려서도 아니고, 우리가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춰서도 아니다. 은혜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고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 미식축구 스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스토리의 주인공인 마이클 오어에게도 은혜는 값없이 거저 주어졌다. 추수감사절 전날, 아무것도 감사할 것이 없는 떠돌이 흑인 소년에게 편견 없이 쏟아 부어진 은혜와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사람들의 인생 또한 빛 가운데로 이끌고 있다.
약물 중독에 빠진 엄마와 강제적으로 헤어지고 흑인가에서 이곳저곳 떠돌며 남의 집에서 얹혀살던 마이클 오어. 사람들은150킬로가 넘을 정도로 몸집이 거대한 그를 빅 마이크라고 부르지만 그 이름은 정작 본인은 싫어하는 이름이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눈여겨 본 미식축구 코치가 마이클을 백인들이 다니는 기독교 사립학교로 데리고 오지만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한번도 해보지 못한 마이클은 선생님들의 골치 덩어리가 된다.성적이 계속 미달되는 바람에 운동도 시작하지 못해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돌봐주던 집에서 또다시 쫓겨나기까지 한다. 그에게 세상이 주는 것이라고는 오직 거절뿐. 그의 삶에는 감사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딸 콜린스와 아들 SJ가 다니는 학교에서 열린 추수감사절 전야제에 참석한 뒤 집으로 돌아가던 리 앤(산드라 블록)은 추운날씨에 반팔을 입고 어디론가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던 마이클을 발견한다. 마이클이 잘 곳이 없음을 알게 된 리 앤(산드라블록)은 그를 자기 집에다가 재우기로 결심하고 차에 태운다. 가족들은 이런 식의 선행은 언제나 있었다는 듯 엄마 리 앤의 돌발행동에 놀라지도 않는다. 언제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옳은 것은 하고 마는 성격이기에 이 가족에게 이런 일은일상적인 듯하다.
마이클을 집에 데려온 그녀는 출신도 성분도 모르는 흑인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는 생각에 뭔가 도둑맞지 않을까 불안해하면서도 마이클에게 잘 곳을 마련해주고 따뜻하게 자도록 해준다. 남편인 숀(팀 맥그로)도 그런 부인의 뜻을 그저 따른다. 다음날 아침, 리 앤은 우려와는 다르게 단정히 시트를 개어놓고 집을 나선 마이클을 쫓아가 불러 세우며 추수감사절을 함께지내자고 제의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리 앤의 가족과 마이클이 살아가는 날들은 늘어나고 그녀는 마이클이 편하게 지낼 수있도록 아예 방 하나를 마련해준다.
리 앤의 아들 SJ는 미식축구에 대해 지식이 해박한 꼬마. 마이클의 전담 트레이너가 되어 그를 훈련시킨다. 마이클에 비해상대적으로 굉장히 작아 보여 둘이 다닐 때면 고목나무와 매미처럼 보이지만 순수한 두 아이들은 서로 도와주며 조금씩 어른들의 세계에 적응해가기 시작한다. 딸 콜린스도 마이클과 함께사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고 따뜻하게 대해준다. 이렇게 사랑이넘치는 리 앤 가족의 도움으로 마이클은 성적도 조금씩 올라가고 결국 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체형적인 장점과 그 안에숨겨진 운동본능이 드러나고 마이클은 실력 있는 미식축구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한편 마이클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법적인 보호자가 되기 위해 마이클의 친모를 찾아간 리 앤은 친모로부터 마이클이언젠가 그 집에서 도망 나갈 것이라는이야기를 듣는다. 주위에서는 흑인 아이를 데려다가 돌봐주는 리 앤에게 의아한시선을 보내고,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말라는 경고를 받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마이클은 이미아들이었고, 가족들에게도 그는 이미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가족이 됐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란 마이클은 각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올 정도로 뛰어난 기량의 레프트 태클이되고, 미식축구 선수로서 인기를 얻기시작한다.
권유가 아닌 감동으로 전해지는 복음
복음은‘예수님을 믿으라’는 외침으로만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일상에서 누군가의 행동 때문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을 때, 그리고 그감동을 전해준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도 복음은 상대방의 가슴을 파고든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단한마디 하지 않아도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이기적이고 각박한 사회에서 포근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특히하나님에게 특별한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킹덤빌더로서 우리가 세상에 흘려보내야하는 은혜 또한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잔잔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나씩 가이드를 해준다.
감독은 영화의 시작부터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건 바로 추운 날 반팔을 입고 걸어가던 흑인 남자아이에게 리 앤이‘우리 집에서 재워 줄께’라며 차에 태우는 장면이다. 그냥 지나쳐 갔어도 될 상황이었고 그랬다 하더라도 누구 하나 뭐라고 손가락질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에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아마도 그녀는 세미하게 말씀하시고 계신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에 반응했다. 덩치는 산만하지만 떨고 있는작은 새 한 마리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라는 음성. 작은 필요를 눈여겨보고 지나치지 않았던 그녀에게 던져진 사랑의 미션이었다.
그녀가 세미한 음성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쳐갔을지도 모른다. 성령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조용해 집중하고 있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분께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변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이런 사람들이 없는지를 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대충 ‘신경 쓰는 척 하다가 사라지는’자세가 아니라 그들도 하나님의 눈과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비닐봉지, 옷, 그리고 세탁소
마이클은 언제나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다닌다. 처음에는 먹을 것인가 싶지만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여분의 티셔츠가 담겨있다. 여기저기 옮기며 사는 바람에 갈아입을 옷 한두벌만더챙겨서다닌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동전세탁소에 자주 머물러 있다.
비닐봉지는 마이클이 항상 담아가지고 다니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것이 한두 벌밖에 없는 옷이든, 지저분한 옷이 상징하는 가난이든, 구겨져버린 자존심이든, 아니면 이미 처음부터 뒤틀려버린 듯한 인생이든 그는 그것을 항상 짐처럼 지니고 다닌다. 그래서 그의 얼굴은 어둡고 슬프다. 그가 짊어지고 다니는 모든 것들이 그를 슬프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삶에 이런 저런 걱정과 근심, 뒤죽박죽된 정체성을 짊어지고 다니는 현대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있다.
지우고 싶은 과거가 많은 마이클은 그래서 언제나 세탁소를 찾는다. 물론 더러워진 옷을 빨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아마도 지워지지 않는 과거, 흑인이라는 정체성, 피부색, 현재를위협하는 자기의 출신을 세탁기에 넣고돌리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옷은 그 사람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인생의 방향성을 이야기한다. 크리스천들에게도‘옷’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은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어 숨어버린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만들어입히셨고,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색깔과 규격 등 모든 것이 정해진 옷을 입어야했다. 회개할 때 사람들은 옷을 찢고 재와 티끌 속에서 회개를 했고 우리는 예수님을 경험하면 헌 옷을 벗고 새 옷을입는다. 세탁하고 싶지만 세탁할 수 없고 버리고싶어도 버릴 수 없는 ‘자아’를 가지고 새 집으로 들어가는 마이클. 물론 이 시점에서 마이클의 손에서 비닐봉지가 사라진다.
그래서 리 앤이 마이클에게 제일 처음한 일은 새 옷을 사주는 것이었다. 즉,그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불어 넣어주기 시작했다. 빅 사이즈가 많은 가게에 들어가서 쇼핑을 하면서 리 앤은 마이클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게는 최고를 찾는곳이라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입지 말라고. 마이클은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는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는 가족이며, 그녀와 남편이 마이클의 보호자라며 마이클에게 계속해서 사랑을 심어주었고 새로운 옷을 계속 입혀주었다.
소소한 사랑, 넘치는 은혜
방을 마련해주자 고마워하며 “이런 건처음”이라고 말하는 마이클에게 리 앤은 “네 방을 처음 가져보는구나”라고 묻는다. 하지만 그에게 처음이었던 것은 자기 침대였다. 마음이 짠해진 리 앤은 나가서 혼자 눈시울을 적신다. 그리고 더많이 마이클에게 소소한 사랑들을 쏟아부어주기 시작한다.
엄마가 어렸을 때 한 번도 동화책을 읽어준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리 앤이 다 큰 자기 아이들과 마이클에게 동화책 ‘페르디난드’를 읽어주는 장면에선 따뜻한 감동이 몰려온다. 페르디난드는 꽃을 좋아하는 소로 엄청난 투우가 될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바램과는 달리 우여곡절 끝에 마을로 다시 돌아와나무 밑에서 꽃향기를 맡으며 즐거워한다는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리 앤은 마이클이 이 순한 소, 페르디난드 같다고 한다. 딸 콜린스도 아름다운 성품의 주인공이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던 콜린스는 백인들만 가득한 도서관에 들어온 마이클을 보고 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책상을 나누어 쓰며 함께 공부를 한다. 다른 친구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가족이 된 마이클에게 따뜻함을 전해준다.
영화는 사람들이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고 있는 소소한 은혜, 나눔, 자비, 배려,사랑에 대해 계속해서 일깨워준다. 그들이 마이클에게 하나하나 하는 행동들을 돌아보며 우리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어떻게 저 사람들은 저런 일을하는게 가능할까. 실화라서 더 영화 같은 행동들에 대한 질문이 영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골3:12). 리 앤 가족은 이미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든 성령의 열매가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영적인 레프트 태클과 육적인 레프트 태클
블라인드 사이드란 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뜻하는 단어다. 쿼터백의 사각지대인 왼쪽에서 달려드는 상대를 보호해 주는 레프트 태클에 대한 별칭이기도 하다. 마이클이 사각지대를 지켜주는 레프트 태클 선수로 미국 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블라인드 사이드라는 단어는 중요하다. 영적으로도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도 한다.
미식축구를 배우게 된 마이클에게 리 앤은“나를 지키듯 쿼터백을 지키고 SJ를지키듯 꼬리를 지켜라”라고 경기노하우를 이야기해준다. 방법을 잘 모르고 있던 마이클은 리 앤의 담백한 설명을 이해하고 경기를 잘 치러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보호본능이 98%나 될 정도로 보호본능 기질이 강한 아이였다. 그리고 이것을 미식축구에 연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미 정해진 일이기도 했다.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거나, 작전을 지휘해야할 쿼터백이 집중하고 온 힘을다해 전진할 수 있도록 누군가가 뒤에서 보호를 해준다면 그 효과는 말할 수 없이 크다. 크리스천 개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공이 주어지고 적들을 뚫고 나아가야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레프트태클이다.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내게 들어오는 공격들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단칼에 잘라줄 수 있는 보호막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중보자들이 될 수도 있고, 소그룹 모임의 멤버들도 될 수 있다. 함께지혜와 전략을 짜는 동역자일 수도 있고 힘들 때 마다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멘토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선수가 잘났다 하더라도 이 싸움은 혼자할 수 없다는 것. 내가 공을 들었다면 반드시 내게는 레프트 태클이 필요하다.나는 누구의 레프트 태클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의 레프트 태클은 누구인가. 이 질문은 반드시 답을 하고 지나가야 하는 질문이다.
미식축구 전략에서 배우는 영적싸움 전략
미식축구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뜻을이루려고 하는 크리스천들의 삶과 비슷한 패턴을 지닌다. 더 나아가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려는 킹덤빌더들의 싸움과도 비슷한 패턴을 지닌다. 우리들은 공(달란트)을 갖고 목표물을 향해 앞으로 나가려 하지만 상대방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다. 무력을 가하고 태클을 걸고기운 빠지는 말들을 늘어놓음으로 심리전을 유도한다.
내가 공을 가지고 있다면 주위에 든든한 레프트 태클을 분명히 세워놓아야 하고믿고 목표물을 향해 무조건 앞으로 나가야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뺏기위해 적들은 무조건 달려든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경기는 팀으로 하지 혼자 하지 않는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하나님은 분명 선수들을 필드에 세워두셨다. 그러니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용사들이 함께 뛰는 전투라는 것을 잊지 말고 힘을 내야 한다.
마이클이 처음 학교에 간 날 시험지에다그린 그림은 꺾여버린 작은 돛이 달린배에 혼자 앉아있는 자기의 모습이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자기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미식축구 선수로서 성공을 할 수 있었던데에는 하나님이 이미 마련해 놓으신 모든 조건들이 그의 옆에 갖춰져 있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마이클이 미식축구 선수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게 된 것은 다른 선수의 사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로렌스 테일러라는 쿼터백 선수가 경기도중 낸 사고 때문에 한 선수가 영원히 선수 생활을 마감했고 이후 레프트 태클즉, 쿼터백의 사각지대를 지키는 보디가드 같은 선수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마이클은 이런 시대의 흐름을 타고 태어났다. 마이클이 미식축구에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기 위해 미리 모든 사전 작업이 다 된 것이다. 물론 안타까운 사고였지만 그런 사고가 없었다면 레프트 태클선수의 중요성이 대두되지 않았을 것이고 마이클이 수많은 구단의 러브콜을 받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마이클에게 새 삶을 불어넣어준 소중한 가족이 있다. 집도 머물 곳도 모두 사라진 그의 필요를 리 앤이 알아채주었고 낯선 이를 집으로 들이는 행동에 반대하지 않는, 이해하기 힘들 만큼 이해심 많은 가족들의 넘치는 사랑이 있었다. 특히 차별이나 격 없이 보자마자 마이클을 형으로 삼아버리는 SJ의 행동은 강퍅해진 우리들의 마음에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잘사는 백인 꼬마가 흑인을 형으로 삼는 게 가능한 것인지, 또 뒤에 친구처럼 언제나 붙어 다니며 서로 아껴주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말이다.그래서 “사람에게는 이것이 가능하지만,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With men this is possible,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라고 교문에 쓰여 있던 이 문구가 영화 내내 생각나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의 이 모습으로 있는 데에는 블라인드 사이드에 있는 수많은 도움들이 존재해왔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나 혼자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작고 큰 모습으로 내게 도움의 손길을 준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 나의 이런 모습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나 또한 참된 구원을 받지 못하고 묶여 있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유함을 얻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 사람을 자유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않다. 스쳐지나가는 것도 무시하지 않는 민감함, 그리고 즉각적인 순종, 은혜와 사랑을 조금씩 흘려보내면 된다. 그리고 때 묻은 정체성을 제거해주고 원래 정체성을 입혀주는 것. 진리를 선포해주는것.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그 때의 정체성을 다시 깨닫게 하는 것. 그러한 회복이 개인, 가정의 회복이고 결국 하나님나라의 회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