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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옮겨 놓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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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옮겨 놓으라

2014년 9월 1일 월요말씀치유집회 메시지


예수님과 가족처럼 지냈던 마리아 가족 중 마리아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예수님께서는, 이상하게도 곧바로 나사로에게로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의 뜻을 행하심으로 인하여 영광을 받을 일이라고 하십니다. 15절에 보면 그 이유가 나와 있는데,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요11:15)”라고 하십니다. 당장 나사로에게 가시지 않은 것은 제자들을 위함이니, 이는 제자들로 하여금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유대인)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11:37-44

 

예수님께서는 가르치고 싶으신 것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이루는 것을 보여주심으로써, 제자들이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경우는 이외에도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불신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믿음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나라의 법인 ‘그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은 믿음의 문제이기 보다는 불신의 문제가 훨씬 더 큰 것입니다.

둘째,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입니다. 돌을 옮겨 놓았을 때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셋째, 바로 그 무덤이 열렸을 때 예수님께서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하고 큰소리로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역하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첫째는 불신의 제거, 둘째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셋째는 주의 뜻을 이루는 사역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신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육신을 치유하는 능력자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걸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했을 때에 마르다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 냄새가 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고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는 예수님께도 하실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나흘이나 지나 냄새가 나는 죽음)는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흘 뒤에 오셨을 때에 마리아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죽기 전에 오셨으면 틀림없이 살릴 수 있는데 이미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음의 권세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법칙을 뛰어 넘는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유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다시 돌아오기 위해 삼일 정도는 그 사람 주위를 맴돈다고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흘이라는 시간은, 유대인의 생각에 의하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왜 삼일 뒤가 아니라 나흘 뒤에 가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모든 인간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두 가지 불신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불신이고, 둘째, 이 세상의 법칙을 붙드시고 만드시고 지금도 이끌어 가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에 대한 불신입니다. 죽음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불신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이 두 가지 불신이 사라질 때 진정한 믿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지금도 붙들고 계십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40절 말씀에 “네가 믿으면”이라는 단서가 나옵니다. 이 말씀은 다시 말하면 “불신을 제거하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천년 전에는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들을 일으키신 것은 쉽게 믿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은 하지만,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예수님인데 이천년 전과 이천년 후에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은 이렇게 엇갈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두 가지 불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불신이 사라지고 주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불신하는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마음의 불신이 제거되고, 그에 따른 믿음으로 행동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통치로 건너오는 유일한 길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마치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1:13

이것은 돌을 옮겨야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로 하여금 불신을 제거하고 믿음으로 영적 세계인 하나님나라로 통하는 문을 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돌을 옮기는 것은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기적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나라가 도래했음을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통해서 그 통치권이 회복되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나라로 침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불신을 제거하심으로써, 새로운 인식 가운데 행동하도록 하고, 결과적으로 주의 뜻을 이루도록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돌을 옮겨 놓았을 때 예수님은 다음 단계의 믿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아들 예수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이며,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것임을 알려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아들 예수님의 신적 권위, 이 두 가지는 전혀 충돌하거나 상호 훼손되는 일이 없으며, 온전히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아버지께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간구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우리 이름으로 우리 생각대로 말하고 행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구할 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행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주인인 삶을 사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하고 부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는 뜻은, “나자레 듀로 엑소”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라!(Lazarus, come out!)”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불신에서 나오라!”하고 큰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죽음의 세력을 깨뜨리는 능력의 말씀이며, 세상 신을 굴복시키는 능력의 말씀이고, 자연의 법칙을 통치하시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가 행하실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아버지께서 행하셨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주의 뜻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14:12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16:23-24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막16:17-20

오늘 하나님나라의 질서를 보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의 불신을 제거하고 새로운 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둘째,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십니다. 셋째, 주의 뜻을 이루는 선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의식이 바뀌면 하나님의 영광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