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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본 주기도문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는 뜻과 동일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은 이미 거룩하신 분이시고,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히 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르치신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름’과 ‘거룩’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름은 어떤 실체를 분류하고 규정할 뿐만 아니라 그 실체의 전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그 실체가 인간일 때는 그 이름은
고유한 정체성과 인격과 형질(모양과 성질)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존재 이유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물리적 실체에 대한 것이지만 사실 이름 안에는 그 물리적 실체에 포함되어 있는 영적 실체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조하신 모든 실체에 이름을 붙이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그 이름에 대한 물리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그 실체의 본질을 알 수 있는 영적인 이해까지도 가능했습니다. 그 말은 각자의 혼적 인식 안에서 이해되는대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에 포함되어 있는 그 실체의 고유한 정체성, 인격, 형질, 존재 이유 등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창조주)의 관점에서 그 실체(피조물)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름 안에 있는 그 실체의 전부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실체와 관계하고 다양한 체험을 함으로써 그 실체의 이름을 더 잘 알아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름 안에 있는 실체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을 창조한 창조주의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그 마음에 품은 것을 창조하시기 위해서 언어를 사용하셨고, 우리에게 그 언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이름을 짓고 관리하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서로 관계하고 있지만, 지금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생명이 없고 그 본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정보와 지식은 있지만 본질적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5:38-40
이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에서 노아의 홍수 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처음 언급된 곳이 출애굽기 3장입니다.
모세가 당돌하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3:12-15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 이름이 말하는 것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I am who I am)’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모든 것의 근원과
본질이 되시며,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인간들과 관계하는 인격이시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이 말씀보다 더 심오하고 본질적으로 나타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속성을 통해서 그분의 이름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법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규레로, 인간의 필요성을 채워주시는 분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 이레(하나님이 공급하신다, 창22:13-14), 여호와 라파(하나님은 치유자이시다, 출15:26),
여호와 닛시(하나님은 나의 깃발이시다, 출17:15-16), 여호와 샬롬(주는 평화이시다, 삿6:24), 여호와 로이(여호와는 목자이시다, 시23:1-3),
여호와 찌드케누(주님은 우리의 의가 되신다, 렘23:6), 여호와 삼마(여호와가 거기 계신다, 겔48:35) 등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으로, 인격으로, 삶으로,
우리와의 관계성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이름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인자로 오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17: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17: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14:9
2) 거룩히
이제 거룩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어로 거룩은 카도쉬(kadosh)로서, 성별 또는 구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흔히 거룩이라는 말을 윤리도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본래의 뜻은 존재적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따라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는 것은
전적으로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분으로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시라 창조주이시고,
또한 그분은 우리의 인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며, 그분은 시간, 공간, 물질을 초월하시고 모든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인식 안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그렇게 여기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래19:2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구별되어’ 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속한 세상에서 세상을 벗하지 말고, 율법을 지키고 행하라는 뜻입니다.
신약에 와서도 동일하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7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1:15-16
이때 거룩하라는 뜻은 단순히 구별되어 이방인들과 동일하지 않은 삶을 살라는 뜻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19-20
우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사람들과 동일하게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영적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지 않은 구약에서는 세상 안에서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별이지만,
신약에서의 구별은 이 세상의 삶이 아니라 도래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키고 행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신약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을 나타내는 삶을 삶으로써 이방인들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형상으로 빚어져 갈 때 그분의 거룩함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거룩은 윤리도덕적인 의미보다는 존재적인 의미가 더 본질적인 의미입니다.
하나님만이 거룩이십니다(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니라). 인간에게 있어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의 나타나심입니다.
우리 안에 찾아오신 그분이 우리를 통해서 더 나타나는 삶, 그분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삶, 그것이 바로 거룩한 삶의 본질입니다.
3)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그동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온전히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함부로 불리는 것을 죄로 여기셨습니다. 십계명의 제3계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신5:1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통하여 당신과 교통하는 것 없이 인간이 자신의 지성으로 하나님을 규정하거나,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에 존재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나타내는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사29:23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을 지키시는 것을 경험할 때마다 그 백성들은 그 이름을 거룩히 여길 것입니다.
즉, 인간이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실 때, 또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베풀어 주시고 채워 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일들을 보며(기억하고, 기념하고, 기대하며) 위대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 때부터 제사를 지내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높였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의 마음은 떠났고 단지 자신들의 유익만을위하여 행위적으로 그분의 이름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열방 가운데서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기까지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그들은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는 대신 하나님을 모독했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써 거룩한 척 했으나, 사실은 교만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36:16-23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족속을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예언은
그들이 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더럽혀진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다시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이방인들 가운데 거룩하심을 보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36:24-27
그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셔서, 하나님에 대하여 회개하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1-3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셔서 자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5:21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한 초대교회 때 종교지도자들의 신앙생활이 어떠했는지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롬2:23-24
다른 말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의 진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거룩히 여긴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신앙생활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진리의 말씀을
지키는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은 단지 행위뿐만 아니라,
그 심령이 변화되는 결과로 그 행위까지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오순절날)이 온 후에는 우리는 더 이상 진리로만
예배드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녀들이) 영으로 하나님과 생명적으로 교제하는 가운데 그분의 진리의 말씀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을 거룩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 예가 바로 다음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0-24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에는 당신께서 하시는 기사와 표적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심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시고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심으로 인하여,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나타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되돌아보면, 과거와 동일하게 오늘날에도 믿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모독을 받고 계신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단지 율법적으로만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게 되며, 하나님의 거룩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은, 단지 우리의 입술만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영에 인도함을 받고 그 영에 따르는 삶을 우리가 사는 것을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뜻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만민으로부터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로부터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는 자들을 통해서만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새사람이 된 자,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자를 통하여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는 자로부터는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로부터 진정으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실체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1:16
신약에 있어서도 이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처럼 거룩하도록 닮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육신의 삶을 포기하는 만큼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우리로부터 더 나타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신 것을 아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룩함을 받으시고,
그 결과로 우리를 통하여 그분이 더 나타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도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하나님(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고, 인간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할 때만이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우리가 온전히 나타날 때, 다른 말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과 형상이 우리를 통해서 온전히 더 드러날 때
하나님의 이름이 더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우리가 매일 행하는 일, 만남, 시간, 물질, 건강을 새롭게 정의해 보아야 합니다.
단지 나를 위해서 또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도록 하기 위해서 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자기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새롭게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일이 일어날 때 여러분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자신의 힘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을 행하려 하고, 더 거룩해 지려고 하는 모든 노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행하려다가 만나게 되는 실패로 인한 정죄와 비판, 자기연민, 교만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주기도문을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었을 때 첫 부분인 서론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나머지 부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다음 부분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위한’ 전제는 이 서론에 해당하는 말씀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나라의 삶의 실마리가 바로 이 서론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제 시간을 가르치지 못하는 시계의 바늘을 정확한 시와 분에 다시 맞추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