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새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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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킹덤빌더여, 새롭게 기도하자.
2015년 2월에 있을 <헤븐리터치센터> 개원에 맞추어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책 『킹덤빌더』를 출간할 예정입니다.
출간에 즈음하여 자신이 킹덤빌더라고 믿는 자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새롭게 배워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묵상해 왔습니다.
저는 이 시대에 회복되어야 할 복음적 가치가 많이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주기도” 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기도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자기 나라를 구하는 시대입니다.
물질이 풍성하고 지식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는 가장 고통 받는 시대입니다. 세상신이 물질만능주의와 자기중심주의로
우리를 통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합니다. 다시금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보면 신앙생활을 할 때 제일 먼저 외운 것이 주기도문이고 늘 주기도문으로 기도해 왔는데,
“주기도”를 다시 배운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킹덤빌더로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역자의 축도(祝禱) 없이 끝나는 예배나 모임의 마지막을 주기도문으로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주기도문에 대한 깊은 묵상이나 믿음 없이 그냥 암송한 것을 내뱉는 식으로 기도하다보니, 주기도문이 마치 주(기도)문처럼 되어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내가 말한 것은 암송하라’거나 ‘내가 가르쳐 준대로 말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되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와 세상을 바라보고 주의 뜻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우거나 함께 고백하는 것은
일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의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킹덤 멘탈리티를 바탕으로 주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를 새롭게 깨달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바로 주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것을 기초로 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하나의 틀입니다.
이 틀을 기초로 하여 말씀(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의 삶과 이 세상에 적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방식대로 주의 말씀을 가지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일정한 시간을 내어서 또는 삶 가운데서 이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2. 기도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들은 기도하고 믿음생활을 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인들만이 기도와 믿음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불신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믿음생활을 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떤 것을 바라보고 어떤 것을 믿으며 그렇게 될 것을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고 기도입니다.
다만 그것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인지 자기 나라와 의를 구하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믿음 없이 기도 없이 어떻게 살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인 기도는 내가 주체가 되어서 하나님께 나의 문제를 올려 드림으로써 그에 대한 응답, 해결, 보상을 받기 위해 하게 됩니다.
그럴 경우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다음 두 가지의 극단적인 패턴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는 신앙공식적인 관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그 말씀을 지키고 행하면,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주셔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은 믿음 없음에 대한 자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기도는 기복신앙적 성격을 띠며 흔히 번영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신앙결정론적 관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주권을 가진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면 우리가 기도를 하든 안 하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고, 그 반대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기 보다는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자신이 행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는 도피적 신앙의 성격을 띠며,
가톨릭의 전통적 신앙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는, 첫 번째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두 번째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마음을 일치시키는 것이며, 세 번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는 자신의 마음공부나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가지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기도문>은 내가 주체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기도입니다.
바로 이 땅에 주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의 일을 행하시도록 하는 기도입니다. 그분이 친히 나타나실 때 우리는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적을 목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은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주님이 친히 나타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제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저지하지 못하면, 그 다음 전략으로 우리를 바쁘게 만듭니다.
우리를 바쁘게 만들면 우선 우리와 몸과 마음이 한 자리에 있지 못하게 되고(몸은 어떤 자리에 와 있지만 마음은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풍성함을 잃어버리게 되고(여유가 없기 때문에), 나아가 기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마귀에 영원히 있사옵니다”라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바쁘기 때문에 기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마귀가 통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귀의 통치하에 속박되지 않고 세상의 풍조에 따라가지 않고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후 관계적인 측면에서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소명적인 측면에서 제자적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항상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께 있는 그 아버지의 자녀들인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것이 바로 ‘주기도’입니다.
4. 구약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약의 대표적인 기도인 야베스의 기도와 십계명에 대해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 보겠습니다.
1) 야베스의 기도
한 동안 “야베스의 기도”라는 얄팍한 책자가 우리나라 기독교계를 휩쓴 적이 있습니다.
이 기도는 야베스라는 구약의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의 축복을 위해서 간구했던 기도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내용이 이 책의 주된 줄거리입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대상4:9-10
‘주여 내게 복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셨다.’라는 내용은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적 사고가
판을 치는 현대문화에서 성공과 번영을 여는 열쇠와 같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이 구절을 쓴 액자가
날개 돋친 듯 팔렸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목회자들이 이 구절을 가지고 설교했습니다.
그 내용은 대부분이 구약의 기도를 신약적으로 왜곡되게 해석하여,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에 축복을 받는 것이
율법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사람 야베스가 하나님의 복을 누렸다는 것은, 짧은 두 구절에서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가 율법과 규례를 온전히 지켰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분은 간과한 채 책에서는 단지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셨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편,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가 야베스와 같은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중생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함으로 나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도 않는 채 아버지께 간구만 하면 야베스가 누린 축복을 우리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복주의적 사고방식이며,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의 동기, 내용, 방식을 생각해 봅시다. 그의 기도의 동기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축복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보다는 물질적 축복과 자기 문제해결이었습니다. 기도의 방식은 어떠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께서 행하신 약속의 말씀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 율법을 지키고 행해야만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구약적 언약도 아니고,
구했더니 주시더라는(즉 간절한 간구는 하나님의 은혜를 촉발시킨다) 방식입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율법을 지켜 행하는 구약적 언약도,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신약적 구원도 제외시키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을 강조하는 해괴망측한 신학인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의 주체는 “나”이며 한 구절에 “나” 가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놀라운 축복기도로 유행한 것은,
자기부인도 없고 자신의 십자가도 지지 않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성공지상주의적인 오늘날의 크리스천의 자화상이
그대로 드러난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지 ‘나의 아버지“가 아니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축복과 성공과 번영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입니다.
올바른 기도는 우리의 뜻(필요)을 구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방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입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사라진지 오래지만, 이러한 관점의 기도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정하신 법과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필요를 위해 믿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여전히 팽배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뒷받침해 주기 위해서 적절한 말씀까지 제공하기도 하는 실정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37:4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7
물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알아야 할 사실은,
아무나 아버지께 구하면 주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셔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간과되는 진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만이 아버지께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하면,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구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주신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십계명과 주기도문의 차이는?
육백 가지가 넘는 계명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지켜 행해야 할 계명들이지만, 주기도문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자녀가 된 자들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그의 일을 행하시는 방식을 가르친 것입니다.
십계명의 주요 내용은 ① 야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② 우상을 섬기지 말라, ③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지 말라,
④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⑥ 살인하지 말라, ⑦ 간음하지 말라, ⑧ 도둑질하지 말라,
⑨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⑩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입니다.
십계명은 타락하여 죄 가운데 있는 주의 백성이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십계명을 지키는 주체는 우리 인간이지만, 주기도문을 이루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구약의 말씀은 진리이고 폐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 빛으로 새롭게 조명하여야 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이루리라마5:17-18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만약 우리가 이 십계명을 지킨다면
10가지를 모두를 항상 지켜야만 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전히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십계명 모두를 항상 지킨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것은 십계명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십계명을 지킬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로 십계명을 지킬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차피 지킬 수 없으니 십계명을 지키지 말자거나,
어차피 지킬 수 없으니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음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3:10-11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그리스도의 은혜로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의인으로 중생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를 나타내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6-40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정리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우리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는 존재이며, 서로 사랑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임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안에 주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주기도문>은 바로 주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것을 기초로 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2015년 올 한 해 동안 킹덤 멘탈리티를 바탕으로
주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주기도”를 새롭게 깨달아 갈 수 있도록, 매달 <주기도문>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