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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그림자 VS 내 안의 영광

내 마음의 그림자 VS 내 안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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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LIFE &
상담
내 마음의 그림자 VS 내 안의 영광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교수 하혜숙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어 교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저에게는 한 가지 새로운 버릇이 생겼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이분은 어떤 수식어를 쓰시나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 또는 취미가 생겼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수식어가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또 다른 분은“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아버지”라고 부르고 또는“전능하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등 사람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부르는 수식어가 달랐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지켜보니 그 수식어와 그 사람의 성격의 한 부분이 일정부분 닮아있거나 연결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공의로우시다고 부르는 분은 기독교윤리 실천운동에 열심인 집사님이셨고,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은 정말이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웃어주시고 손잡아주시는 권사님이셨습니다. 물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부를 때 앞에 붙이는 수식어가 모든 것을 다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초신자인 저에게는 참으로 재미있는 발견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된 특성이나, 또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투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상담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개념들 중에 투사(projection)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투사는 자기 스스로 혹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충동이나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게 전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결점을 타인이나 환경의 탓으로 돌려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결함이나 약점때문에 갖게 되는 위협이나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성적이거나 공격적인 충동을‘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보게 되는데, 앞서 예를 든 것처럼자신의 긍정적인 특성을 하나님께 투사할 수도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특성을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칼 융(Carl Jung)이라는 학자는 개인마다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충동들을 포함하고 있는 어두운 부분, 즉 그림자(shadow)가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콤플렉스(complex)라는 말을 쓰는데 이 용어를 처음 쓴사람이 바로 융입니다. 융은 그림자를 받아들여 영혼 속에 편입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가 심리적건강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상하게 주는 것 없이 미운사람이 있지요? 시치미 떼지 마시구요. 왜 다들있으시잖아요? 어쩜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하는 짓이 미운지, 어떻게 그렇게 얄미운 짓만 골라서 할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얄밉다면, 그것은 나의 그림자가 투사된 것이라고 봐야합니다. 융이 말하기를‘내 것이 아니면 나를 건드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즉, 나와 전혀 상관없으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지 내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토록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내 안에 있지만 정말이지 내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못난 부분, 어두운 부분의 특성을 그 사람이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미운 사람이 있다면 못난 내 모습이려니하고 용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투사의 원조는 하나님이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중략)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27

 

 

하나님을 알고부터는 뭔가를 배우게 되면 하나님과 연결시켜서 생각하고 해석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신학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단지 제 생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선한 것, 좋은 것, 아름다운 것,온전한 것의 원조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발견되는 원리들을 볼 때 하나님 안에서 비추어 보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옳은 일입니다.

투사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만드셨기에 우리에게도 투사하는 능력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온전하신 사랑 안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에게 투사해 주셨는데,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난 후부터는 온전치 못한 깨어진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난 후 가장 먼저 한 것도 바로 자기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고 탓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3:12-13

 

 

저는 상담을 배우면서 투사 작용이 신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인간의 모든 심리적 능력의 원조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사실 그것은 처음에는 온전하고 선한 것이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왜곡되고 변형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세상의 심리학자들은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마음을 연구하기에 그 현상의 신비의 능력의 원조와 원형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러한 메커니즘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죄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기에 이제 하나님께서 애초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대로 온전한 반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금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왜곡된 자아의 어두운 그림자를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 원조 그대로를 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2:9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5:23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우리 안에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껏다른 사람들에게 옮겨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내 안에서 주님이 강같이 흘러넘쳐서 주변을 적시도록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7:38

 

 

이제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안에서 어두운 나의그림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형상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비출때그사람안에하나님께서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형상이 빛나기를 소망합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투사할 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마음껏 나타나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4:19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