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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Panic disorder) IV

공황장애 (Panic disorder)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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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공황장애 (Panic disorder) IV

 

한양의대 교수 김석현


옳은 스트레스 해소법은 방탕함과 공격성을 조장하지 않아야 하고, 경쟁과 서열화를 타파해야 하며, 비판과 정죄할 이유가 없도록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절제하도록 해 주어야 하고 오래참고 온유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며, 오래 참음과 자비가 생기도록 해야 하며, 그래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우리의 영·혼·육에 넘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지난 호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였고, 우리가 하나님의 의(義)가 되었음을 믿는 믿음이야말로 스트레스를 이기는 완전한 무기라고 나누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어떤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수 있으려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해소된 상태란 자율신경계에서는 교감신경의 활성이 최소화되고 부교감신경의 활성이 극대화되는 상태이며, 내분비계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들이 최소필요량만 분비되는 상태이며, 근골격계에서는 불필요한 근육긴장 없이 이완되어 있는 상태이며, 정서적으로는 긴장감이나 불안감이 없이 안정감과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편안한 상태입니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가 자신을 사랑하는 건강한 엄마의 젖을 배부르게 먹고 엄마 품에 안겨서 잠들어 있는 상태가 가장 비슷한 예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스트레스해소법이 효과적이라고 말하려면, 부분적으로라도 위에 설명한 것과 비슷한 상태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전 호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스트레스 해소법들의 문제점을 다소 과장하여 설명한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 방식의 스트레스 해소법들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방법들이 스트레스가 해소된 상태를 만들어 주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특성이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런 방법들이 방탕함과 공격성을 조장하고 경쟁과 서열화를 유도하며, 비판과 정죄를 일삼도록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어떤 문제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앞의 예에서 다루었으므로 다시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재미있는 예를 한 가지만 들고자 합니다. 제가 교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공동체 식구들과 새로운 차원의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그 사랑 안에 푹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함께 가는 소풍에도 참가를 했었습니다. 각자가 정성껏 준비해 온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소화가 좀 되고나서, 목장 대항 배구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속한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가 코트로 들어섰고, 같이 가신 목사님께서 심판을 보시기로 했습니다. 상품을 걸기는 했지만 그리 변변한 것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공이 오고가면서 점수가 매겨지기 시작하자 슬슬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대편의 실수에 환호하고 같은 편의 실수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수록 분위기는 더욱 격앙되어 급기야는 심판을 보시는 목사님의 공정성까지도 의심하고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런 일까지 벌어지자 다들 위기감을 느끼고는 승자, 패자를 가리지 않은 채 적당히 얼버무리며 경기를 접었습니다. 경기 직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졌던 사랑이 어느 새 경쟁심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한 목사님의 강의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집단생활을 하는 공동체를 운영하시는데, 그 공동체에서도 정기적으로 운동시합을 즐기지만 일반적인 시합과는 다른 방법으로 시합을 진행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즉, 팀을 나누어 경기를 진행은 하되, 점수를 매기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야구시합을 예로 들자면, 1회 초에 공격을 하는 팀이 점수를 얼마를 내든 카운트하지 않고 쓰리아웃 될 때까지 공격을 즐기다가 쓰리아웃 되면 그 때 공수만 전환하는 방식입니다. 몇 회인지는 세지만 점수는 세지 않으니 이기고 지는 것이 극명하게 비교가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물론 점수를 매기지는 않더라도 잘하고 못하고는 차이가 있을 것이고 실수인지 아닌지도 드러나겠지만, 적어도 점수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상황은 생기지 않을 듯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야구시합을 해 본적이 없어서 과연 재미가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 곳에는 경쟁(competition)이 아니라 긍휼(compassion)이 넘친다는 설명에는, 공동체 봄 소풍을 경험해 본 저로서는 진심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재미나 짜릿함이나 흥분을 느끼는 어떤 것에는 이기고 지는 것이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하다못해 동네축구를 해도 내기를 합니다. 그래야 재미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 흥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락한 인간들이 사용하는 극단적인 방법이 인간의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멀게는 로마의 검투사들이 그런 일들을 했었고, 사람이 죽지는 않도록 주먹에 솜을 씌워서 하는 권투도 그런 형태인데, 최근에는 어떤 보호 장치도 갖추지 않은 채 거의 맨주먹으로 상대가 정신을 잃거나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정도로 다칠 때가지 싸우는 형태의 경기가 스포츠의 한 형태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스포츠 경기를 직접 관전하려고 운동경기장을 찾는다고 합니다. 저도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자녀들과 함께 즐길만한 여가문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험담과 심한 욕설, 심지어는 죽어버리라는 저주에 가까운 말까지도 허용이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요? 한 심리학자가 운동경기장에서 공격성을 마음껏 표출하는 것이 공격성 해소에 도움이 되는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공격성 감소에 도움이 되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여러분들이 예상하시는 것처럼 공격성을 마음껏 표출하는 것은 공격성 감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자주 더 쉽게 공격성을 표출하도록 만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많은 연구들이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터넷상에서 소위 악플을 다는 것이 당사자(소위 악플러)들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들도 진행된 것이 있습니다. 악플을 다는 행위 이후에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효과를 거두느냐는 것이 주된 연구의 목적이었는데,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자신의 분노나 공격성이 가라앉고 안정감과 긴장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되다보면 결국은 분노를 감소시키기 보다는 증가시킨다는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과 없이 공격성을 표출하거나, 욕망을 방탕하게 채워보거나, 경쟁상황을 만들어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 애쓰거나, 마음껏 다른 사람을 욕하고 비난해 보아도 그것이 주는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며 결국에는 그런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공격성을 더 심하게 드러내어야만 하고, 더 심한 욕설까지 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는 결코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않고 결국은 증가할 뿐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16:32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약1:19-20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분노하거나 비판하는 것에 대해 준엄한 경고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렇게 했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그만큼 큰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행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것이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옳은 방법인지를 구분해야 하며, 무엇보다 공격성이나 분노를 표출하도록 만들거나 다른 사람을 비판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피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5:16-21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옳은 스트레스 해소법일까요? 앞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리해 보면, 옳은 스트레스 해소법은 방탕함과 공격성을 조장하지 않아야 하고, 경쟁과 서열화를 타파해야 하며, 비판과 정죄할 이유가 없도록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절제하도록 해 주어야 하고 오래참고 온유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며, 오래 참음과 자비가 생기도록 해야 하며, 그래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우리의 영·혼·육에 넘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결국성령의 열매가 우리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해 주는 올바른 길인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정욕과 탐심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투기함으로써 겪게 되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5:22-26

 

 

어디서 이런 일이 가능해집니까? 바로 하나님나라 안에서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들에게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인들이 행하는 방식을 따라서는 안 되며 따를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법으로는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는커녕 더 쌓이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예수님을 영접한 분이 구원 전후로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에 대해 간증하신 것 중에서 한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분은 워낙 술을 좋아하셔서 누가 술 마시자고 부르면 열일을 제쳐두고 달려 나갔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구원받은 후에는 술자리가 갑자기 재미가 없어져서 이제는 일부러 술자리를 피하신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이와 비슷한 간증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누가 저에게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느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친구들과 함께 술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떠는 것이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적당히 취하는 정도였고 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모임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 모임에서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구원받고 나자, 즉 스트레스 해소의 새로운 지평을 경험하고 나자, 그 모임은 더 이상 스트레스와 관련해서는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더 이상 스트레스가 큰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트레스를 유발할만한 상황에 처해있든지 아니든지, 그 상황이 여러분을 심하게 흔들어 놓지 못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스트레스가 여러분을 어찌하지 못하는 차원으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독수리가 잡새들의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은 잡새들이 올라올 수 없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그런 차원의 삶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음이 믿기어질 때 이 땅의 어떤 스트레스 요인도, 불확실한 미래뿐만 아니라 나의 죽음조차도 우리에게 더 이상 불안과 두려움을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안에 거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경험할 때 이 세상은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성령의 열매를 누리며 스트레스 없는 새로운 세상을 사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1-33

 

 

우리에게 좋은 것 주기 원하시는 아버지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스트레스를 이기는 완전한 무기인 하나님의 의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차원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없는 새로운 차원의 세상인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스트레스로부터도 자유로운 우리를 보고 세상 사람들이 궁금해 할 때, 더 할 수 없는 확신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義)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들도 모든 스트레스로부터 자유케 될 것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