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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라이프 1

2015년 4월 7일 <화요말씀치유집회> 메시지


 

지금 이 글을 읽는 이 시간,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좁은 문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통해서 여러분을 만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거처 삼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그분을 만나려고 애씁니다.

“주님, 어떻게 하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주님, 제가 뭘 더 해야 합니까?

제가 얼마나 더 헌신해야 합니까?

얼마나 더 거룩해져야 합니까? 얼마나 더 말씀을 읽어야 합니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그러한 조건에 도달해야만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의 모든 역동성이 쉬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들 기도할 때 조용한 장소를 찾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혼의 모든 역동성이 멈출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조용한(quiet) 상태가 아니라 잠잠한(silent) 상태입니다. 즉, 여호와 앞에 잠잠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여호와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여호와 앞에 내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생각도, 내 감정도, 내 의지도, 내 욕망도, 오감을 통해서 내가 뭔가를 느끼고 인식하는 것,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그 마음을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하나님 앞에 잠잠한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아마도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자신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셔서 그분이 나를 통해서 행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는 너무나 무지하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잠잠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찾기 전에 그분이 먼저 우리에게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고,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여겨집니까?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여러분의 내면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합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그것이 지금 나의 현주소입니다.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의 현주소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우리도 영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혼과 육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혼과 육을 최선으로 가동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행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실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드리는 삶을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평생에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도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마시고,

그 생각과 감정,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통치하실 수 있도록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루어 가는지와 관련되는 ‘킹덤 라이프’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정작 그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4-5

 

우리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 바로 예수님은 포도나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포도나무 열매는 가지에 열립니다. 그 열매는 가지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열매는 포도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생명수가 올라옴으로 인해서 그 포도나무 열매가 가지에 맺히는(bearing)것입니다.

그 열매는 가지가 스스로 생산해 내는(product)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해서 우리의 삶에 열매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포도나무의 가지로써 우리가 붙어 있을 때에 열매가 가지에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라야 만이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억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께 이를 자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서만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삶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육신으로 오셔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통해서 잃어버린 아버지와 새로운 관계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이룬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구원 복음의 측면에서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원 복음에 묶인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나의 죄를 사하신 것에만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함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우리가 그분을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드릴 수 있고, 그때라야 만이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고,

하나님나라가 임할 때라야 만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입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동일하게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라야 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11:3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창조의 능력이십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매 빛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관의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물질에 묶여 있어서 눈에 보이고 감각되는 것만 인식할 수 있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바로 말씀이 능력이고 말씀이 실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침반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침반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이지만, 나침반을 돌리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구에 자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이 세상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을 믿을 때에 그 말씀이 우리의 심령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신과 삶까지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주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너희가 이미 나음을 입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의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덮게 되고,

그 영광이 덮을 때 주의 말씀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보이는 우리의 육신과 혼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주의 말씀이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임하신 그 말씀을 계속 붙드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의 능력이, 그 말씀의 창조의 능력이 지금 여러분의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고 있고,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여러분이 그려보고 기도하는 그 사실에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을 한 번 믿었다가 확인해보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뻥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현실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영의 세계에서는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을 우리가 붙들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루신 그 일들을 선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내 질병이 떠나갔습니다. 내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옛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3:9-10

 

성경의 말씀에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옛 사람이란 것은 바로 옛 자아, 옛 본성, 죄성에 기초해서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살아가는 육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죄악 가운데 태어나서 마귀의 본질을 나타내는 옛 자아, 옛 본성, 죄성에 기초해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을 옛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옛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다면 이제는 우리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따라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형상을 좇는다는 것은 그분의 형상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새로운 신분이 되고,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성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새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 인해서 우리는 새로운 본성(divine nature),

하나님의 본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내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 안에는 옛 자아, 옛 본성, 죄성은 떠나가고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 인하여 새 생명 가운데서 거룩한 본성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내 육신은 내 삶 가운데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우리의 본성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바로 그 본성에 기초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만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우리가 비록 새 사람이 되었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의 프로그램 된 형태가 내 마음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영 안에 오신 그 새로운 본성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생명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 육신을 날마다 새롭게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화되는 삶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2-24

 

새 사람의 삶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 구습을 날마다 죽여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삶입니다.

심령으로 새롭게 된다는 것은, 내가 더 헌신하고 더 절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령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 마음의 생각과 태도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좇는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님에 의해서 나의 태도, 나의 생각이 새롭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더 나타나시게 되고 구습은 점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더 이상 옛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성은 죽었습니다. 옛 사람은 죽었습니다.

우리는 새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 너에게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라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할 때 그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룬 것과 동일하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능력이 우리 안에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그 주의 말씀을 선포할 때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의 비밀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여러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 여러분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좌표를 바꾸십시오.

여러분 삶의 태도를 바꾸십시오. 여러분은 시시한 존재가 아닙니다. 구원은 그렇게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구원은 이 세상에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에 여러분에게 과거와 다른 놀라운 삶이 전개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