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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자녀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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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메세지

 

속죄의 비밀과 치유 2

2015년 10월 6일 월요말씀치유집회 메시지


 

 

우리가 지난주에 말씀을 나눌 때 치유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배웠지만, 믿음만으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시는 “능력”이 함께 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는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있고,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회복시키시며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계실 때와 계시지 않을 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다른 말로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때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날 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눅5:17-26

 

 

 

이 시간에 이 중풍병자와 그 중풍병자를 침상에 데리고 왔던 친구들의 믿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믿음, 그리고 오늘 우리의 믿음의 차이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알아보기 원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함께 하더라”라고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라고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더라는 뜻이었음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생각할 때는 틀림없이 중풍병자 보다는 옆에서 들고 온 친구들, 그 친구들이 대단한 것이지요. 그 지붕과 기와를 다 뚫고 병자를 내렸으니까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네가 구원을 얻었느니라” 또 다른 말로 “네 믿음이 너를 치유하였느니라” 이런 말씀도 하시지만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그 말뜻이 무엇인지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옆에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뒤집어졌습니다.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질병을 치유하는 것은 믿었지만 죄를 사하신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능력자인 것은 받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 하는 것하고 일어나서 걸어가라 하는 것 어느 것이 쉽겠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사실 죄 사함을 받았다 하는 것 보다는 그 죄 사함에 대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에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와 그 다음에 “일어나 걸어가라” 하신 말씀은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바로 죄 사함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질병이 치유되고 귀신이 쫓겨 갈 수 있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모든 질병은 궁극적으로 직·간접적인 죄 때문에 발생한 것이고,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주셨기 때문에 질병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내가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너희가 알게 되리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 징표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서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했을 때에, 그 시로 그 중풍 병자가 일어나서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밤에도 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말씀하시기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영이 계십니다. 우리도 육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말씀이 영이고 생명인 것을 아는 자는 자신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으로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귀로 지식으로 들으면 그것은 내가 그 말씀을 듣고 내가 그 말씀을 판단하고 내가 그 말씀을 이해하고 내가 그 말씀을 거절할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요 생명인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풀어지면 내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내 본질에서 그 생명의 말씀이 올라오기 때문에 그 말씀이 믿기어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 중풍환자가 반신반의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할 때 그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그 내면에서 그 말씀이 올라오기 때문에 그는 “지금 내 상황이 어떤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이런 비교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본질에서 그 말씀이 올라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당연하게 일어서서 침상을 든 것입니다. 바로 기적은 이때 일어납니다. 아멘!

이천년 전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죄 사한다”라는 말씀에 걸려서 신성모독이고 죽여야 한다고 예수님을 비난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는 “죄사함을 받으셨어요!”, “죄 사함을 받으셨어요!”하면 다 믿지만 “예수님이 치유하셨습니다.”라고 하면 말은 “아멘!”하지만 안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예수님이신데 이천년 전에는 질병 치유하는 것은 다 믿었지만 죄 사함은 못 믿었습니다.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죄 사함 받았습니까?”라고 질문하면 다들 “아멘!” 마음껏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당신 치유 받았습니다!”하면 만져보고 느껴보기 바쁩니다. 안 믿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 죄 사함이 그 질병을 치유하는 근원이고 똑같은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천년 전에는 죄 사함을 못 믿고 오늘날에는 병을 치유하는 것을 못 믿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에는 어떤 사람이라도 치유를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예수님 앞으로 나와야 되었습니다. 백부장의 하인도 백부장이 예수님께 왔기 때문에 치유를 받은 것입니다. 아멘! 수많은 사람이 그 집에 가득해서 정상적으로 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없지만 그 친구들은 지붕위에 올라가서 기와를 다 부시고 침상을 내려서 예수님 앞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왔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천년이 지난 오늘은 우리가 그분을 만나러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예수님이 계신 곳, 우리가 가는 곳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존재라면 하나님의 영에 민감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삶은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잘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것은 일상의 삶입니다. 영성이라 함은 일상적인 삶에 그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아멘! 그것은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우리의 영으로써 그분과 교제할 수 있다면 세상에 이것보다 더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그런데 그 분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징표는 바로 성령 체험을 통해서 그 성령님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누가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고, 누가 생선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못난 아비라도 자식에게 좋을 것을 줄 줄 알거니와 어찌 하늘에 계신 천부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말세에 모든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물 붓듯이 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아를 깨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귀를 거역할 수 있는 자유의지도 있습니다.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자유의지도 있습니다. 오늘 내 방식대로, 내 생각대로 하지 마시고 오늘 이 시간에 말씀대로 자신을 던져 넣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바로 죄 사함을 받을 때에 우리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시간에 아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예수님만이 아니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 교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이 장면을 보면 두 가지의 믿음의 장벽을 뚫어야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5:17-26

 

 

첫 번째 믿음을 방해하는 장벽은 물리적인 장벽입니다. 바로 사람들이 많아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지붕위에 올라가서 기와를 빼내고 내려오는 장벽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믿음의 장벽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장벽을 우리가 통과할 때라야만 이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붕을 뚫고 내려오는 것은 비정상적이며 합리적이 아닙니다. 혈루증 여인은 돌로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피를 흘리면서 그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예수님 앞에 나아간 것입니다. 바로 믿음의 장벽을 뚫은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판단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만 믿는다면 그 장벽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와 값을 물어주는 한이 있어도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 그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바로 그 장벽을 뚫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장벽을 뚫기 위해서 정말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첫째,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인식하는 그 사고방식을 버려야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는 없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나의 판단의 대상이 아니고 믿음의 대상입니다. 아멘! 내가 주체가 되어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영이고 생명이고 내 심령에서 풀어져야 될 일들인 것입니다. 아멘!

자기가 주체가 되는 삶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헬라어로 보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에는 ‘내가’가 에고(Ego)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죽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에서 ‘내가’는 조에(Zoe)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우리말 번역으로는 ‘내가’로 동일하게 되어있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과거의 에고로 내가 주의 말씀을 믿습니다, 내가 받아들입니다하고 있다면 그런 믿음은 아무런 기적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여전히 주인이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조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내는 존재입니다. 아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둘째, 사차원에 묶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차원은 쉽게 말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사차원입니다. 가로, 세로, 높이, 시간을 합치면 사차원입니다. 영적인 존재는 차원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생명의 말씀이, 빛이 있으라 하신 그 생명의 말씀이 영이고 생명인 말씀이 물질로 빛으로 바뀐 것입니다. 오늘도 기적은 그렇게 일어납니다. 아멘!

그렇지만 이 감각에 묶여서 보이는 것, 듣는 것, 내 마음의 생각하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 그런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풀어질 수가 없습니다. 바로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의 영광이 이 전에 임하고 있습니다. 볼 수 없어요, 만질 수도 없어요, 느낄 수도 없어요, 생각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이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시고 그 영광을 통해서 지금 주님의 생명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그런데 그 생명을 찾지 않고, 그 소리에 있는 지식만 찾고 귀로 듣는 사람은 얻을 게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질과 비물질은 사실은 구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오감을 통해서는 보이는 것, 경험되어지는 것만이 실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셋째, 우리의 오감과 경험에 기초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감과 경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준인 오직 말씀에만 기초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요, 생명인 것이 실제이고 지금 보이는 이 피조세계는 거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육의 사람은 지금 보이는 것이 실제이고 그것의 거울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모든 이 세상의 피조세계는 영의 세계에서 뭔가 일어나야 그 결과로 육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의 모든 판단의 기준은 내 과거의 경험도, 지식도, 내 감각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 존재라면 모든 판단의 기준은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기뻐하라” 그러면 여러분은 내가 기뻐하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힘든 상황이지만 이 상황을 이기고 내가 기뻐할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라” 이러면 그 순간부터 내 존재는 기뻐하는 것이구나 하면서 그냥 기뻐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판단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 말씀이 풀어지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지금 왜곡되고 타락되고 부패된 곳에서 질병과 고난과 환난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시고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대로 지음을 받고 말씀대로 이루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나아갈 때에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눅5:24-25

 

 

두 번째 장벽은 육과 영의 경계를 뚫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육신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오감에서 벗어나고 내 지식과 경험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일어나 걸어가라” 이러면 그냥 넘어지더라도 그냥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영과 우리 영 안에 교통이 일어나고 그 교통이 일어났기 때문에 영광의 통로가 열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혼과 육에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자기의 생각이 들어가면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배운 핵심진리는 첫 번째로 죄 사함과 질병의 치유는 다른 것이 아니며 동일 선상에서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능력이 아니라 기적을 경험했다면 죄 사함을 받았다는 증거도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는 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복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는 현재 믿음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차원을 넘어 오차원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아멘!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이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내가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내 생각, 감정, 의지를 일치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감각이나 경험에 기초하지 마십시오. 오직 말씀에 기초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영적 존재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고 생명입니다. 나는 내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영 안에 있는 말씀이 내 혼과 육에 풀어집니다. 아멘!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레미야, 에스겔, 히브리서에서 오순절 날 이후에는 내 영이 너희에게 들어가서 내 말씀이 너희 가슴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그 말씀이 내 마음에 기록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밖에서 듣는 것이 아니라 영을 통해서 듣는다는 것입니다. 말씀만이 생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기록된 진리의 말씀만을 내 이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실체를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이 밤에 여러분들이 성령 안에서 말씀이 생명으로 변해서 그 말씀의 실체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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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님. 내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 믿었는데, 죄 사함의 결과가 내 질병과 내 문제를 치유하고 해결하는 것이라는 것은 믿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나의 죄를 사하셨다면,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주님이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내 생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감정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의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요 생명의 말씀이 내 심령 안에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심령에 있는 말씀이 내 혼과 육에 풀어집니다.

오늘 이 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십니다. 내가 아무런 감각이 없다 할지라도, 내 느낌이 없다 할지라도,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고, 그 영광 가운데 하나님 말씀이나에게 임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영광 안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나를 영광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