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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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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기도

2014년 9월 15일 월요말씀치유집회 메시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4:23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10:7-8

하나님나라가 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자녀들의 믿음과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비밀입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 즉 그분을 찬송하고 경배하고 그분의 말씀으로 내가 새롭게 빚어지기를 원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으로 그 자리에 임하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친밀함을 나누게 되며, 그리고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5:14-15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5:16-18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첫째, 병든 자가 있으면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며,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예로,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의인으로서 믿음의 기도를 했을 때 비가 오지 않게도 하고 반대로 비를 내리게도 했습니다. 이 말은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러한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HTM의 집회를 통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믿은 대로 될 지어다!”라고 선포하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도들이, 그리고 우리와 같은 성도들이 하나님나라 도래의 증거로서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포와 주장에 대해서, 그리고 HTM의 집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과거의 다른 집회들에서 행해지던 “믿음 운동”과 동일한 것이라고 말들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손 장로는 “믿어라, 믿기만 하면 된다.”라고 믿음을 강조하지만, 실제적으로 믿었지만 그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많지 않았으니,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는 “믿기만 하라”를 주장해서, 집회 내내 믿는다고 선포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허탈해 가며 돌아가는 많은 성도들이, 스스로 “나는 믿음이 없거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나보다.”라는 마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생기는 것은, 기존의 사고방식으로 이 집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 집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구약적인 사고방식으로 듣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HTM의 집회에서 말씀드리는 믿음은 구약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의 믿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나라 관점에서의 믿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자와 자녀, 하늘나라와 이 세상, 법과 현실의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신자의 자녀의 관점

이 관점에서는 다음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 볼 수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여전히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아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신자인가?’ 아니면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이루는 자녀인가?’의 측면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알아야 하고, 그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신을 섬기고 있으며, 그 신을 기쁘게 하고 노엽지 않게 함으로서 복을 빌거나 형통을 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문제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질병과 환난을 없애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우리의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그분이 필요하지만, 살 만하면 그분의 존재도 그분의 필요성도 그분과의 교제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지금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필요한 신자가 아니라, 그분의 품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자녀들, 즉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자신의 마음을 일치시키는 자를 찾고 계시고, 그들을 통하여 주의 뜻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둘째는, 주의 뜻을 이루는 자녀의 삶이 아니라 신께 드린 제물에 대한 대가로 무엇인가를 받아내려는 마음을 가진 신자의 경우는, “give and take”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믿은 대로 될 지어다”라는 말에 대해서 많은 분들은 “내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해 주신다”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결국 믿으면 그 믿은 대가로 하나님께서 기적을 (하나님나라의 도래의 증거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존재이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거나, 행하거나, 갖다 바치고는 그 대가로 무엇을 얻어내는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삶과 자녀의 삶의 차이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신자는 하나님이라는 신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행함으로써 그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교제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적이고 율법적이며 행위보상적인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말씀을 내가 지키고 믿었으니, 나는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대가로서 무엇인가가 주어지지 않으면, 내가 지불한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은 대로 될 지어다”라는 말을 이해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HTM의 집회에서 제가 “믿은 대로 될 지어다!”라고 선포하고 주장하는 것은, 말 자체는 동일할지 모르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신을 믿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연합하여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것을 포기하고, 나 자신이 죽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뜻을 나타내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삶을 사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더 이상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주의 뜻, 주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내가 주의 말씀을 믿고 행위적으로 해드린 만큼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믿음으로 주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존재가 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서로를 바라보는 관계에서, 내가 주 안에서 주와 같은 방향을 보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주는 만큼 받는 존재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한 번 내가 믿어 주었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분의 믿음으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같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어떤 한순간의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의인의 믿음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의인의 믿음은 성령 안에서 내 생각, 감정, 의지를 주의 말씀에 일치시켜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결코 한번 기도하고, 한번 확인하고, 한번 실망하는 그러한 일이 아닙니다. 믿는 만큼 받을 수 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믿은 만큼 하나님께서 더 역사하실 수 있다는 개념으로 믿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하늘나라와 이 세상의 관점

HTM의 집회에서 기도할 때, 종종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았음을 선포하노라”라고 기도합니다. 이 말에 대해서 비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말을 한다고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기를 치고 있다고까지 맹렬히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위에 인용한 두 말씀의 시제는 현재인가요 아니면 과거인가요?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역사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심으로 인하여 하늘나라에서 이미 이루어진 약속의 말씀이 이 땅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선포하고 기도하는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이루신 것을 이 땅에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즉,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진 것을 선포함으로써 땅에서 동일한 것이 실체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지 않고 어떻게 이 땅에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하늘나라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3.법과 현실의 관점

잠시 다른 각도에서 한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집을 사려고 이미 돈을 지불하고 그 집의 계약서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계약서를 받는 순간 그 집은 이미 여러분의 소유이지만, 실제로 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것은 또 다른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그 집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고 살고 있는 사람에게 “이 집은 내 집이 될 것입니다. 나가 주세요.”라고 말을 할까요? 아니면 “이 집은 내 집이 되었습니다. 나가세요.”라고 말을 할까요? 만약 전자처럼 이야기한다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당신 집이 되었을 때 오세요.”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셨지만, 그 일이 지금 우리의 현실에 나타나는 것은 또 다른 일인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을 가진 의인으로서 엘리야의 간구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
왕상18:1-2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왕상18:41-45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엘리야가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를 한 것이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 비를 본 적도 없지만 아합에게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For I hear a mighty rainstorm coming!)”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엘리야는 미친 사람이거나 정신 나간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 하나님을 자신의 이성으로만 아는사람, 그분이 살아계신 사랑의 내 아버지라는 사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는 엘리야처럼 말하는 사람을 제 정신이 아니거나, 자신을 예수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7번이나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한 번 기도하고 자신의 육신의 고통을 느껴보고,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을 때 실망하는 것과는 차원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내가 믿었으니 그 대가로 무엇인가를 바라고 확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계속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내 마음을 주의 마음에 일치시킴으로써 주의 권능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 감정, 의지를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시켜 가는 것이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일에 임하심으로써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넓은 바다에 손바닥만 한 구름 한 조각을 보았을 때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보이지 않는 주의 말씀이 보이는 세계에 나타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믿음으로 기도했지만 기적이 일어나는 것보다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인의 믿음의 기도를 배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만 하고 현대 의학에는 의존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궁극적인 치유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기도한다고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사도 바울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7-9

질병이 치유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전히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질병을 낫게 하실 수 있으나, 모든 질병의 치유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고치지 못한 질병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결국 어떤 질병이 낫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하여 그 질병이 낫지 않는 것입니다. 치유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거나 우리의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으면 된다고 했는데 믿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믿음을 포기하고 병이 낫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다른 방법을 취해야한다는 논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치유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그 병으로 죽을 때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13:5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믿음이 이렇다 저렇다”고 하거나 “믿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는 등의 말을 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의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녀의 믿음의 있는지 없는지를 확증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향해 내 전부를 던져서라도 내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그 자녀인 내가 잘못 되는 걸 눈뜨고 못 보십니다. 날 위해서 당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실 만큼,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아멘. 그분이 내 안에 계신다면, 그분께서 나를 통해서 그분의 뜻을 이루시도록 모든 믿음을 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믿음은 순간적인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뭔가를 드린 결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정말 믿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느끼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허탈해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시작이라는 것을 알기를 축원합니다. 엘리야를 기억해 보십시오. 엘리야가 한 말을 기억해 보십시오. 아무것도 없었을 때에 큰 비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일곱 번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나의 마음을 맞춰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마음에 더 일치되고, 일치되는 만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자녀의 삶입니다. 할렐루야! 나에게 있는 질병이나 문제를 쉽사리 사도 바울의 가시라고 여기고 포기하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훈련하십시오. “내 은혜가 족하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포기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 전까지는 믿음의 경주를 해 나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