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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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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도

2014년 7월 7일 월요말씀치유집회 메시지


 

우리는 매일 매 순간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사실은 매일 매순간 기도 생활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매일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삽니다.
우리의 마음은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매일 보고 듣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경험할 때 그것을 의식하고, 의식한 결과로써 우리는 어떠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현실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또는 문제가 이렇게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등 우리 마음 속에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사실 매일 순간 순간마다 믿음과 기도생활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이 일은 이렇게 됐으면 좋겠는데, 저 일은 저렇게 됐으면 좋겠는데,
이 일은 나에게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이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사실은 무엇을 믿고 누구에게 기도하느냐의 문제이지 우리는 매일 매순간마다 믿음생활을 하고 기도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마음에 생각하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그 일이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나에게 유익이 오도록, 좀 더 형통하고 잘 되고 축복을 받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른 말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이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세상적인 방식으로 세상에서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고 의식하고 믿고,
자기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를 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자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자기 나라의 형통, 축복,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인지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는 믿고 기도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문제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기도하느냐,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느냐, 그 차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우리에게 믿음과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 세상을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되는 그것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10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하시면서 그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타락한 존재로써,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되는 것을 믿고 자기 나라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하며 살아왔는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9-10

 

다른 것을 듣고 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입술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보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믿고 그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이루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믿음 생활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지금 스물 네 시간 매 순간 하고 있는 것이 믿음생활이고 기도생활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면서도 어려울 때마다 힘들 때마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이 상황에서는 이 일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 일을 위해서 누구를 만나야 될까 등을 생각하며 간절하게 믿음생활과 기도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바로 말씀을 믿고 그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1:2-3

 

성경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이 천지만물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의 실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적으로 볼 때는 비물질과 물질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말하는 것이 어떻게 실체로 나타날 수 있느냐고 이상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아멘.

예, 그렇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은 영입니다. 말씀은 생명입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이 땅에 모든 피조세계가 만들어졌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만큼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믿음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믿음의 비밀은 하나님이 처음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 만드신 법칙이기도 합니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이 믿음의 법칙은 우리 믿는 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문제는 무엇을 믿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믿은 대로 그 믿음의 결과가 자기 자신과 현실에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입니다.
법칙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천지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원하셨고, 그분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말씀으로 이 천지만물을 지으셨고, 그 말씀, 이 땅을 통치할 수 있는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분은 생명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상상하고 말하고 선포하고 행동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음을 받았습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우리는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권세와 능력이 마귀에게 넘어갔습니다.
이 세상의 주관자는 마귀가 되었습니다. 우리 심령 안에 들어온 자도 마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본성 위에서, 부모로부터 그 가정으로부터 그 시대로부터 들어오는 이 세상적인 것을 날 때부터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믿음으로 가지고 그것을 말하고 그것을 선포하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지으신 이 모든 피조세계와, 우리 인간은 본래는 온전했지만 이 타락한 세상에서
마귀가 우리에게 준 그대로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의식하고 믿고, 믿는 대로 말하고 선포하고
행동한 결과로써 세상을 왜곡시키고 타락시키고 변질시켰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믿은 대로 될지어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흔히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현실이 내 삶을 제한시키고 이 현실 때문에 내가 이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나에게 돈이 많았더라면, 갖가지의 ‘if(만약에)’를 상상하면서,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 현실이 내 삶을 제한시킨다고 굳게 믿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러분, 그것은 마귀가 사용하는 최고의 속임수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셨을 때 주신 그 만고불변의 진리는 “믿은 대로 될지어다!”입니다.
사실은 우리는 우리의 믿은 대로 우리 자신과 현실을 만들어내고, 그 현실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현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제한받고 지금 내 꼴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현실에 좋지 않은 것이 나타날 때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염려, 걱정, 근심, 불안, 두려움들, 우울들, 미움들, 분노들로 차게 되고,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늘 부정적인 생각들로 우리 마음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은 대로 병이 들고 믿은 대로 그 현실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래 이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상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만들어졌는데,
우리가 타락하고부터는 마귀에게 속해서 마귀의 본성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변질되고 왜곡되고 타락한,
관계가 깨어진 이 세상으로부터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로 믿고 믿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니까 그 결과대로 이 현실은 계속적으로 타락하게 되는데,
마귀는 이 현실 때문에 내가 이럴 수밖에 없다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현실이 어떻다 할지라도 우리가 마귀의 속박 아래서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되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을 통해서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고 선포할 때는 이 현실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마침내 하나님의 통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했다.
내가 너희의 죄를 사할 것이니까 그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나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제는 본래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이 말씀을 듣고 상상하고 느끼고
선포하고 행동할 때에 너 자신과 너의 현실이 바뀐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한테 친히보이시고, 무엇을 믿고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안에는 아버지의 마음이 가득 찼고, 그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말씀에 따라 상상하고 느끼고
선포하고 행동할 때에 수많은 기적들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그 기적은 하나님나라의 질서입니다.
바로 그 일이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믿고 그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눈으로 보는 이 타락한 세상에서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가득 채우고,
또 이 현실과 상황에서 지금 들어오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중생했다는 것은 새로운 부모 안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현실과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의 삶입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는 믿음생활하기가 왜 이리 힘든지요?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정말로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은 내가 지금 서른이든 마흔이든 쉰이든 예순이든 일흔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다시 태어났다면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생각해 보면 믿음 생활하는 것, 기도 생활하는 게 어떻습니까?
자기의 경험, 자기의 지식, 자기의 소유, 자기의 신분에 기초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에 집어넣고 그것을 믿어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내 현실의 삶을 좀 바꾸어 보려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좀 더 형통하고 축복받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그 말씀을 내 머리에다가 집어넣고 믿습니다.
“아멘!”하며 새벽에 앉아서 기도합니다. “주여!” 외치며 그렇게 생활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앙생활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왜냐하면 자기의 모든 마음의 기초는 이미 타락한 곳에서 배워온 걸로 가득 차 있는데,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말씀, 이 세상의 말, 이 세상과는 정반대되는 그 말씀을 집어넣고 그것을 끌어안고 믿는다고 기도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냐는 겁니다.
우리가 정말 복음을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존재입니다. 우리 자신을 지금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겁니다. 아멘!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예! 육은 무익한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연합하고 부활하심에 연합할 때에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그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부터 우리는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는 것,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가 정말로 기억해야 되는 것은 여러분의 나이와 상관없이, 여러분의 경험과 상관없이,
여러분의 지식과 상관없이, 여러분의 신분과 상관없이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태어났을 때에 엄마가 날 보고 엄마, 맘마 할 때, 왜요? 어떻게요?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육적인 어린아이일 때 뭔가를 분별하고 선택하는 게 없이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영적인 어린아이로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배운 지식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륜에 기초해서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주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네가 나음을 입었느니라”는 말씀을 들을 때,
입술로는 “아멘!”이라고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그 일이 일어날까?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까? 어떻게?” 등의 갖가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말씀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말씀을 들을 때,
“언제 사랑해요? 어떻게 사랑해요? 나는 느끼지도 못했는데요?”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어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짜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그냥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지으셨다고 하시면 그냥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이해하려고 하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 모든 것을 다 알고 살아갑니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불빛도 아인슈타인의 입자설이냐, 아니면 맥스웰의 파동설이냐 등등 이론 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빛의 본질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빛을 만들고 스위치 켜고 빛을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지만, 아무런 의심 없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하나님의 말씀만은 내가 풀어봐야지, 내가 이해해야지, 내가 깨달아야지, 그래야만 받아들이겠다는 관점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그게 바로 마귀의 마음입니다.
우리 육신은 삼십이든, 마흔이든, 쉰이든, 예순이든 평생 동안 마귀의 책략 속에서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나서 처음 영적으로 눈을 떠서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성령 안에서 말씀에 따라 상상하고 느끼고 선포하고 행동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현실에 묶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이 현실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 가는 삶,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삶입니까? 이 현실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상상하고 느끼고 선포하고 행동함으로 인해서 내 자신과 이 현실을 바꾸어가는 것만큼 놀라운 특권이 어디 있습니까?
왜 믿음이 어렵습니까? 왜 기도가 어렵습니까? 지금 있는 육신대로 기도생활, 믿음생활 하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되어서 말씀대로 그려보고, 말씀대로 상상하고, 말씀대로 말하고,
말씀대로 행동할 때에 바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적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 생활하는 것이 너무나 좋지 않습니까?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6:18

 

이 모든 것을 위해서 우리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해야 합니다.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의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훈련을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할렐루야!

지금 있는 이 상황에 염려, 걱정,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올 때마다 그것을 느끼는 것은 육적인 삶을 사는 ‘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과 능력과 근신의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것이 들어올 때마다 깨어서 이 세상 모드를 천국 모드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하나님 말씀대로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2:9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현실이 늘 불행했기 때문에, 그 경험한 현실에 묶여서 그 현실에 제한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현실에 묶여서,
지금 눈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붙들고 그것을 마음에 그려봄으로 인해서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타나는 현실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후자가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할렐루야! 매일 매일 현실이 인간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한 인간의 믿음 정도가 현실의 한계를 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멘!
“그리스도인은 현실에 제한받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도화지에 주의 말씀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는 자이다.”